어쩌지 못하는 부모 노릇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4강
프로젝트

 


어머니와 딸을 상담하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딸이 먼저 와서 상담 받으면서 어머니에게 말한 모양입니다. 어머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딸의 행동을 상담자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을 겁니다. 상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어머니는 그냥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간단히 처방만 받아가고 싶어했습니다. 감기약 처방 받듯이 단 한 번에 끝낼 수 있다고 여긴 모양입니다.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나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딸은 어머니 때문에 자기가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원망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처지에서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잘 해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주고 다 해주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서 해낸 일인데 이제 와서 모든 탓을 자기에게 돌리며 딸로 어머니에게 그렇게 대할 수 없다고 입에 거품을 뭅니다. 남편의 폭력과 치우친 시댁의 처사 속에서도 꿋꿋이 해낸 자신의 위대함을 말합니다. 자신의 업적을 아주 크게 치부합니다. 남편의 어리석은 판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앞길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었다고 합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손위 오빠나 띠 동갑 언니에게도 자기가 오히려 손위 사람 구실을 했다고도 합니다. 우리나라 많은 어머니들이 과한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했다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들도 그런 특성을 가집니다.


순조롭게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어린아이 때부터 “세상에 잘 왔다”고 환영받고 자랐다면 편안한 ‘자기신뢰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억지를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어려움에 처해도 혼자 해내려 하지 않습니다. 성미가 급해 “욱”하는 남편과도 소통하는 방식을 찾아야 했는데 그렇게 하기보다 남편이 화나지 않도록 혼자 알아서 처리해버립니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살 수 없어 남편과 헤어집니다. 아이들도 부모에게서 배웁니다. 직장상사가 힘들게 하면 그 상황을 조절하며 해결하려 하지 않고 혼자 애쓰다가 되지 않으니 그냥 떠나버립니다. 나이 먹도록 청소부하는 노모에게 기대어 살아갑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온 딸은 마음에 들지 않는 남편과 같이 살 방법을 모릅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들이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하고, 해야 할 것을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 탓에 자기들이 불행하다고 주장합니다. 어머니는 남편과 시댁 때문이라 하고, 아들은 상사가 나빠서라 하고, 딸은 나쁜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이 결혼하고 싶었던 좋은 남자를 엄마가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원망합니다. 자기들에게 이런 문제가 있는데 그걸 바꿔야 한다고 하면 듣기 싫어합니다. 진정으로 아직 자기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더 맞을 겁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관계를 윤활하게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관계를 조절할 힘의 결핍이 심각합니다.


집에 콕 박혀있는 아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오히려 쉽게 관찰됩니다. 많은 사람들과 인터넷으로 사귐을 갖는 딸은 인기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외국 남자들과 사귐을 활발하게 가집니다. 그러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하나도 없습니다. 이용당하고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머니도 일터에서는 혼자 해내는 행태가 있어서 윗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자랑삼습니다. 그러나 동료들은 믿지 않고 무시합니다. 혼자해내는 것에는 자신 있으니까요. 그러나 아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은 일방으로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에게 이해받는 마음의 관계가 필수이니까요. 아이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없는 어머니가 어떻게 아이 마음을 볼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혼자 다 해준다고 하는 착각 속에서 살아 온 탓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뭘 해줘야 문제가 풀릴까 하고 있습니다. “밥해준다고?” “달라는 만큼 돈을 준다고?”
그 어머니는 그렇게 상담소를 떠났습니다. 다시 오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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