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니>의 특집으로 “자기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늘 그렇게 해왔듯이 매 호마다 어떤 글을 쓸지 모여서 고민하고 그 고민을 같이 나누는 시간을 이번에도 가졌습니다. 우리는 그 모임을 ‘기획회의’라고 합니다. 누구나 같이 할 수 있는 모임입니다.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을 흥미롭게 발견하곤 합니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그에 따른 태도로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자기를 움직여 어떤 방향으로 살게 하는 그 가치관은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바뀌고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중요한 출발점은 부모입니다. 부모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아이에게 곧바로 제일 먼저 영향을 미칩니다. ‘돈 문제’로 늘 싸우는 부모를 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부모님이 여러 가지 다른 문제로 불신하면서 정작 그 본질의 문제는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 돈을 핑계삼아 다투었더라도 아이는 보이지 않는 이유보다 내세운 이유만을 부여잡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른들이 마음을 깊이 숨겨두지 말고 제대로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점잖은 처지에 서로에게 바라는 욕구충족에 미흡한 것을 트집잡아 짜증을 낼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미숙한 어른이 열등감으로 더 강력하게 자기 권위를 부렸을 수도 있습니다. 바깥에서 문제를 풀지 못하고 집에 들어온 아버지가 이미 참을 수 없이 불만으로 가득찬 상태로 가족을 만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집안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와 하루 종일 무료하게 지낸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시계만 들여다보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팽팽한 고무풍선이 되어 귀가한 줄을 어머니는 눈치채지 못했다고 합시다. 왜냐하면 당연히 자기야말로 이해받아야 할 사람이라 여기는 욕구로 잔뜩 쭈그러져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이해와 위로의 사랑으로 부풀려지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서로 여유가 없습니다. 서로 안색도 살필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서로 날카로운 고슴도치가 됩니다. 탱탱한 풍선이 터지고, 쭈그러졌던 풍선에 기운을 불어넣지 않아 아름다운 모습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결혼하고 달라졌다” 합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나 보다!”에 이르면 살고 싶지 않아집니다. 그러고는 엉뚱하게 ‘돈’을 문제로 싸움이 벌어집니다. ‘음식 맛’이 싸움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이미 본래의 문제에서 멀리 떨어진 이유로 전쟁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벌어진 전쟁터 같은 살벌한 분위기에 놀란 불쌍한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힘이 없으니 상처받습니다. 자신을 가누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 ‘몸만 어른’들이 부모 구실을 잘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이는 내면이 미숙한 부모의 문제를 알 수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하는 아버지의 무능이 문제이거나 만족을 모르고 절약할 줄 모르는 엄마의 문제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까다로운 아버지 ‘입맛’이 문제이고 그걸 맞추지 못하는 엄마가 문제라 오해합니다. 그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면서 ‘돈’ 과 ‘입맛’을 해결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구요?)
바깥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안색을 먼저 알아보는 시력을 가진 어머니였으면 어땠을까요? 자신을 집에 가두어두는 존재로 아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도 서로 소통할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아보고 즐긴다면 쭈그러든 풍선이 되지 않았을 테지요. 집에서 맞아주는 어머니 안색을 살필 줄 아는 아버지였으면 어땠을까요? 바깥일을 달가운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힘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여유로운 기운으로 가족을 대하지 않았을까요?
사람은 고무풍선이 아닙니다. 작은 바늘 구멍으로 온 힘이 다 빠지는 고무풍선이 아닙니다. 함께 사는 사람들과 어려움을 같이 극복해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인 이웃을 알아보는 눈과 신음소리 들을 귀와 마음을 알아줄 영혼이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어른 된 우리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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