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서는 뜻을 익히기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2강
프로젝트

태어난 지 일곱 달밖에 안된 동연이는 자기 몸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주변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은유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원하는 것을 말로 어느 정도 표현할 수 있게도 되었습니다. 두 아이를 보면서 삶의 두 발달 시기에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즐기는 방식을 우리 눈앞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나름으로 두 아이가 사는 방침을 볼 수 있습니다.

동연이는 자기를 좋아하는 어른들을 믿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믿습니다 (기초신뢰감이 있다는 말입니다). 어디를 가나 그 아이와 눈을 맞추고 성의를 다해 어르는 소리와 표정으로 재롱떠는(?) 이모들을 보며, 마치 “오냐! 봐주마!” 하듯이 아이는 환하게 웃어줍니다. 그러기만 하면 이모들이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습니다. 윤미 이모는 우리 모두, 다수의 이모들과 이 할머니를 제쳐두고, 동연이 입맛을 맞추려고 연어 버거에 연어 비린내를 누르고 산뜻한 맛을 낼 청양 고추를 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연이는 매번 알트루사에서 새로운 음식을 황홀하게 맛보게 됩니다. 서로 믿고 알아주는 관계가 동연이의 삶의 방침입니다. 억지를 부리는 폭군이 될 필요가 없고, 서로 믿고 아끼기만 하면 됩니다.

태어나서부터 비슷한 과정을 알트루사에서 거치고 아직 두 살이 채 되지 않은 은유는 이미 수동의 관계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겨우 낱말만으로 외마디 하는 단계를 넘어 문장으로, 그것도 경어로 표현하면서 적극으로 뜻하는 바를 설득하고 얻어냅니다. 동연이와 달리 주어진 음식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먹어본 파스타 집에 가는 길까지 이모들에게 알려줍니다. 이때, 그 나이, 유아기에 발달하기를 기대하는 독자성(autonomy)을 발휘한 것입니다. 언젠가 엄마 아빠와 새우를 맛있게 먹었답니다. (아이에 따라 청국장일 수도 있고 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새우가 든 파스타를 먹었던 집을 기억했고, 층계를 피하고 싶어 건널목으로 가자는 이모들에게 지하도로 가야 한다고 했답니다. 전에 갔던 지하도 길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어른 (양육자) 사이에 서로 적합한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믿음이 형성되면 아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믿고 협력하며 사는 삶의 방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모가 많은 알트루사에서 아이가 자라면, 엄마 한 사람과만 자란 아이들보다 다양하고 고룻한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육아서를 읽고 아이를 몇 살 될 때까지 엄마 혼자 기르는 것이 좋다고 해서 거의 우울증에 걸린 엄마가 억지로 아이를 지키며 허덕이는 것을 봅니다. 아이는 혼자 기르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을이 같이 기르는’ 겁니다. 그래도 엄마와의 특별한 관계는 어차피 보장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자기 같은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님을 천천히 배워갑니다. 혁빈이가 교회에 오지 않은 날 은유는 “오빠 안 왔다”를 몇 번이고 혁빈 엄마 옆에 와서 외쳤습니다. 자기는 엄마 아빠와 교회에 왔는데 안 오는 아이도 있다는 걸 확인합니다. 동화와 나란히 앉아 저녁 먹다가 실수로 손가락 깨물고 아파서 우는 동화를 보고는 자기도 손가락을 깨물어봅니다. 이렇게 아플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이해해보려 합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맞는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처리해낼지를 익혀갑니다. 아이의 표현을 제대로 보고 들어 아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면 어른이 되어가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며 문제를 풀어갈 수 있게 됩니다. 아이의 마음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자란 사람은 제대로 마음을 전달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하고 무기력해집니다. 평생을 사는 것은 늘 새로운 삶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기에 각 시기마다 이해받으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체험의 연속입니다. 아이 때 제대로 못하고 자란 사람은 나중에 다른 사람들과도 제대로 소통할 수 없어서 문제 상항을 맞아 불안에 떨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섬처럼 외롭게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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