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해서 모두 다 성숙한 부모 구실을 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집에 일찍 들어오는 것을 피하는 아빠들이 있습니다. 일터에서 집에 오거나 주말이 되면 아내가 아이들을 돌보라고 맡기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합니다. 술자리를 길게 끌고 주말이면 낚시나 골프하러 혼자 나서거나, 완전히 방바닥에서 등을 떼지 않고 잠을 자거나 TV 채널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돈 벌어 오는 것으로 아버지 역할을 다 한 것이라는 논리를 폅니다. 바깥일 하는 엄마들 가운데도 그런 생각을 가진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집에서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무시하고 자신을 위해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엄마가 관심 없었던 것을 아이가 자라서 성토하는 단계에 이르면, 그제서야 일찍 퇴근하게 되었을 때 집에 일찍 가지 않고 영화구경을 가거나 쇼핑을 했다고 고백합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 건강하고 성숙한 부모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기르는 것에 책임을 지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깥일 하는 것으로 아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을 모두 제공한다고 할 일 충분히 다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돈을 책임지고 있는 버냉키 장관이 프린스톤 대학 졸업식에서 한 말이 바로 이겁니다. “돈이 다가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여 마음을 공유하는 관계를 충분히 맺어야 합니다.
얼마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가 딸 같은 나이의 여성에게 한 일을 봅시다. 그는 한 여성과 결혼하여 이미 독신자(single)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자녀들의 부모이기도 할 겁니다. 자유로운 총각이라도 문제가 될 짓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마치 아무와도, 책임 있는 관계가 없다는 듯이 행동한 겁니다. 책임있고 독자의 정체감을 가지고 대등한 이성과 결혼하고 두 사람의 아이를 낳아 사랑하며 사는 삶을 제대로 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겁니다.
에릭슨(E. H. Erikson)은 이런 사람을 정체(stagnation)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세대를 생산하고 키우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사람을 두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늘 자기중심이고 자기의 욕구만이 중요하여 인간관계를 풍요롭지 못하게 만듭니다. 에릭슨은 이런 사람을 그릴 때 “자기 자신을 마치 자기의 외아들이나 외딸 (only child)이라도 되는 양”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욕구가 우선이고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면서도 가짜로 가까운 듯이 행동합니다. 허리를 쳤다거나 엉덩이를 움켜쥐는 것은 이런 행위입니다. ‘서로’ 공유하는 사랑의 관계가 아닌데도, 대상의 마음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자기만의 욕구로 덮어 씨우는 막무가내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청와대 어떤 인물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문제가 심각합니다. 성추행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부부들이 동상이몽의 상태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두고 자기 판 (version) 소설을 씁니다. 서로를 ‘몹쓸 사람’을 만들며 삽니다. 아이들은 사랑해주는 아버지를 마음껏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왜냐면 엄마가 아버지를 나쁜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주입하고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들 마음을 순탄하게 자라 꽃피우고 열매 맺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혼란 속에서 불안에 떨며 숨죽이고 살아, 겨우 연명하게 만듭니다.
이런 부모가 어린 시절 자신들의 부모에게서 믿음을 누리지 못해서 이런 미숙한 부모가 되었듯이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 역시 든든한 믿음을 누리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들고 맙니다. 다음 세대는 또 다시 그 다음 세대를 불안하게 만들고 성숙을 멈추게 합니다. 이제 성숙을 향해 같이 고쳐가며 건강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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