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2022.9.(251호)
<기후응급시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말하며
김희정
마늘, 양파 농사를 망쳤다. 겨울을 무사히 이겨내고 잘 자랐는데, 4월이 되자 많은 마늘과 양파가 죽었다. 원인을 살펴보니 땅속 생물이 지나다니며 뿌리를 들어놓아 썩었다. 마늘과 양파가 이렇게 되기까지 나는 코로나에 감염되어 아팠고, 그러면서 일이 밀렸고, 밀린 일을 하느라 오랫동안 밭에 가지 않았다. 내가 돌봐야 하는 밭보다 다른 사람과 하기로 한 일을 우선순위에 두었기 때문이다. 농사를 망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스스로 위로했다.
생강 농사는 망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생강밭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땅속 생물의 흔적을 보며 그들에게 하소연한다. “너희가 자꾸 내 작물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면, 내 마음이 나빠져.” 그런데 그 말에 누가 대답하는 것 같다. “우리가 네 작물을 망치는지 알려주지 않는데 어떻게 알아?” 나는 한마다 더 한다. “야! 내가 너희들이랑 이 땅을 공유하려고 기계도 안 쓰면서 애쓰는 거 몰라?” 그 말에 “우리가 조상 대대로 살던 곳을 네가 먹을거리 생산할 수 있게 나눠줬는데 네가 나한테 그래도 되는 거야?”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제야 내가 얼마나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인지한다. 그러면서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어쩔 수 없었던 건가? 내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가?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핑계 대고 도망간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 것이다. 내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도 남편이 옆에서 알려줘야 겨우 받아들인다. 부끄럽다.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하지만, 자책은 나를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을 알기에 그만 하려고 한다.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에 조금 더 집중하고자 한다.
그동안 나는 소식지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지구환경의 위기를 알트루사 모람과 공유하고 함께 하자 권했다. 위기의 순간은 갑자기 오는 것 같지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기가 오기 전 대비하라는 경고가 먼저 온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 경고를 외면한다. 외면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내세워 계속 변명과 핑계를 댄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앞으로는 그들의 이야기가 이곳에 소개되길 바라며 나는 이 글을 끝으로 연재를 마치려 한다. 그동안 내 얘기를 들어준 모람에게 감사드린다.
필자인 김희정 님은 현재 환경교육강사로 활동하며 텃밭농사를 짓고 있다. 아이가 자연환경에 가깝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출산 후 전북 장수로 이사했다. 제236호부터 기후위기에 대한 글을 연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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