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신문에 오늘 (5월 14일) 창피한 대학의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연구 윤리 저버린 교수들”이라는 특별 항목아래 한 면이 꽉 차게 실린 기사입니다. 교수 자신이 쓴 논문에 공동 저자로 미성년 자녀의 이름을 올려 대학입시에 덕을 보려한 경우를 조사한 것입니다. 어쩌다 한두 사람이 그랬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끔찍한 일인데 그 숫자가 상당한 것에 놀랍니다. 이른바 유명 대학들과 국립대학 15곳을 교육부에서 조사한 결과랍니다. 교수 제자들의 연구 발표 논문에도 교수 자녀의 이름을 얹어놓기도 했답니다. 모두들 일등이라며 아이들 입학시키고 싶어 하는 서울대학이 그 부패 교수의 숫자에서도 일등이고, 내가 다닌 대학도 창피하지만 거기 이름이 올라있습니다.
부정하는 어른들과 그 어른들의 부정을 거부하지 못하고 돕고 있는 제자들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한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하리라“는 것을 믿어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 교수들은 진리를 찾아 연구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그 진리로 사회에 봉사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부패와 타락은 적합하게 처벌 되어야 할 것을 믿어봅니다. 우리네 부끄러운 몰골을 새삼스레 보는 것 같아 머리에 숯불을 얹은 것 같습니다. 요즘 체면을 잃고 떠들어대는 어른들, 성추행이니 온갖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나이가 점점 젊어져가는 현상을 한탄하던 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앞으로 어른이 될 사람인, 그 교수들의 나쁜 짓의 혜택(?)을 받고 자라는 자녀들의 입장을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정말 혜택이라고 좋아할 수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교수인 부모의 부정한 덕으로 국내나 국외 대학에 입학했다고 칩시다. 자기됨됨이와 실력을 평가받아 자격을 갖추어 대학생이 되었다고 떳떳하게 생각할까요? 양심에 털이 난 부모 품에서 자라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기초신뢰감이 길러졌을까요? 평생을 살아가는 단계에서 자기 나름으로 자기답게 한 발자국씩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을까요? 부모와 다른 판단을 하면서 떳떳하게 부모와는 달리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당장은 쉽게 얻은 결과에 “웬 떡이냐!” 할지 몰라도 또 누군가의 덕을 입어야 그 자리도 유지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평생을 그렇게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든 해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연장삼아 사는 비참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인생의 첫 단계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자신을 스스로 느껴 알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리하지 않고 평화스럽게 지낼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은 부모의 자세에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기초신뢰감이 안정되게 자리 잡았다면 자기답게 자기 능력껏 성실하게 노력하여 성취할 것입니다. 자기가 남다르듯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것도 당연히 알고 느끼며 서로 인정하면서, 협력할 줄도 알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힘을 무리하게 이용하여 자기 스스로의 성취가 아닌 결과를 혜택으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 교수의 아이들의 마음이 궁금해집니다. 이른바 국내외의 유수 대학에 가서 그 부모에게 감사하며 행운아라고 기뻐하고 감사할까 묻고 싶습니다. 거기 더해서 잘났다고 뽐낼까 걱정입니다. 그들을 보고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있을까 속이 상합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쉽게 성취하려는 건강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꾼을 양산하게 되지 않나 싶어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그런 손쉬운 방법을 쓰려 하더라도 아이가 자기 스스로의 자세로 살 것을 주장하고, 달콤해 보이는 독을 거부할 수 있어야 우리 사회가 바로 될 것입니다.
모두가 각자 자기다움을 알고, 서로 다른 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기초신뢰감을 튼튼히 가지도록 길러져야 하는 것을 늘 절감합니다. 최순실을 보면서 능력 있는 어머니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그 자리에 있었으면 자기도 그랬을 거라는 시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부모가 “몇천 억을 벌면 이 (나쁜) 일에서 발을 뗄 거라“는 청년을 양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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