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자격증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9강
프로젝트

자동차 운전을 하려 해도 운전 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학교 선생이 되려고 해도 교사 자격증이 필요합니다. 온갖 직업에 종사하려면 그에 걸맞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일이니 운전 자격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르는 일이 아니니 교사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말에 아무도 딴 소리하지 않습니다. 집을 튼튼하고 아름답게 지어야 하니 건축사 자격증을 받아야 하고, 길을 잘 닦아야 하니 자격증 있는 토목사가 필요합니다. 병을 치료하는 의사 자격증도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위한 모든 일은 중요하니 자격을 갖춘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데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다음세대를 낳고 길러내는 부모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건강한 아이로 길러내는 데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의사는 어쩌다 봅니다. 그런데 부모는 매일 매순간 아이의 건강을 보살펴야 합니다. 아이의 교육이 중요하지요. 그러나 교사는 특정 기간에 방학을 빼고 매일 몇 시간만 아이 교육을 책임집니다. 많은 아이들 틈에서 한 아이 한 아이에게 제대로 눈길을 주지 못하고 아이들 마음을 건너 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졸업하면 그만입니다. 부모는 태어난 순간부터 매일 24시간, 한 해 열두 달을 평생 보살피며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도 부모 자격증은 없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결혼했습니다. 관청에서 결혼 자격증을 받고나서 교회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평생 잘 살겠다고 서약하는 결혼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혼 여행간 호텔에 결혼 자격증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서로 아끼며 서로 책임지며 살 약속을 지킬 자격을 인정받는 것입니다. 관청에 가기 전에 의사에게 건강 진단서를 받아야 했습니다. 둘이 다 학생 신분이니 아직 아기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면서 그 의사가 피임약을 처방해주었습니다. 아직 부모 될 자격이 없다고 의사가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둘이 그냥 사랑하며 살지, 아직은 아이는 낳지 말라고 하는 말로 들렸습니다. 자유를 구가하는 나라지만 우리 마음대로 결혼하고 또 아이 낳지 못하게 제약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만큼은 부모 됨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상담을 할수록 어떤 부모 밑에 자랐는지가 자녀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이들이 세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첫 사람이 부모입니다. 첫 경험이 제일 중요하지요. 게다가 아이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이 완전히 부모의 손에 달린 삶의 초기 경험은 더 없이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시기였을 수 있습니다. 말도 못하는 시기라서 어른들이 아이의 마음상태를 알아보지 못할 수 있지만, 아이의 눈을 통해 본 것과 귀로 들은 것, 마음으로 느낀 것은 아이 마음에 아주 깊이 각인됩니다.

 

흔히들 부모 가운데 어느 편을 닮았다는 말을 합니다. 유전 요인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부모 어느 편과 동일시하고 그편 삶의 방침을 따랐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의식하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아가 개발되기 이전에 터득하는 것이어서 무의식의 영역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머리로는 이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왜 내가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알고 하는 일이 아니니 말입니다. 육아서와 심리학책에서 익힌 것을 그대로 해보려 하는데 마음먹은 대로 실천할 수 없어 답답해합니다.

 

아주 어린 아이가 어떻게 부모를 제대로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름 자기마음에 사진 찍힌 인상으로 부모와 관계를 맺으며 자랍니다. 그 뒤로 오랜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인상을 바꿀 수 있는 체험을 다양하게 하면서 그 틀에서 벗어나고 정정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그런 부모와의 현실 경험을 순조롭게 하지 못하면 초기에 생긴 비현실의 부모상을 평생 고집스레 유지하며 살게 됩니다. 오해 속에서 고집스레 살게 됩니다. 다르게 사는 부모상을 책뿐 아니라 실제 이웃에서 보면서도 수정할 줄 모릅니다. 우리 모두 자기 틀을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건강한 어른이 되어 아래 세대를 책임지는 마음을 갖출 수 있도록 바뀌고 자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뿐 아니라 다음 세대도 제대로 어른으로 살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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