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과제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1강
프로젝트

발달시기를 한 단계씩 거쳐 오르면서 언제나 앞 단계와 뒤따르는 단계가 어느 정도는 겹쳐집니다. 학령기에 놀이시기의 재미가 같이 있어 아이들이 재미롭게 공부해 온 것을 보았습니다. 뒤 따르는 사춘기 때는 어른으로 커리어를 가지기 전에 일관된 자기다움을 찾아내는 때로, 학령기 후기에 배울 것을 익힌 자신의 능력과 성취체험, 그리고 환경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일관되게 자신이 인정받고 위치설정되었던가 하는 것으로 해서 앞뒤 시기와 겹쳐집니다. 자기가 속한 사회계층이나 부모의 문화 사회 경제상의 위치 같은 것을 의식하는 때이기도 해서 정체감을 거기서도 보태고 얻습니다. 몸의 성장속도가 빨라지고, 제2차 성징이 드러나 몸의 변화를 예민하게 체험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아이 때와 어른 되기 사이에서 양편을 다 엉거주춤 엿보고 느끼는 때입니다. 그만큼 갈피잡기 어렵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때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내면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사이에서 동질성 (sameness)과 일관성(continuity)을 찾게 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다”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쟤는 어떤 사람이다” 같이 가게 됩니다.

 

 우리가 자라던 때만 해도 부담 없는 학령기에는 성취를 별로 노력하지 않고도 가볍게 이루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 이르면서 과업이 그렇게 쉽고 간단히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제는 조금 더 심각한 노력을 요구받게 되었습니다. 성심껏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기 정체성, 됨됨이(identity)를 설정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열심히 하는 아이”라는 것이 “쟤는 열심히 하는 아이”라고 인정되는 거지요. 외국어를 처음 접한다든가 수학 과목이 다양화하고, 과학이나 사회과목도 분화되어 과목마다 전공자가 전문선생이었던 것도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몸의 성장과 때를 맞추어 어른이 되어 살아갈 길을 생각하고 자기의 삶의 태도를 정하는 때를 맞는 단계가 자연스럽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 어떤 일을 하든가 어떤 역할을 맡아도 나답게 해낼 것을 스스로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조기교육이 성해지고, 외국어도 일찍 도입되고 원어민 교사에게 일찍부터 배우면서 부담없는 어린 시절(carefree childhood)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오늘 이 시대에서 사춘기의 의미가 어떤 것일지 다시 생각할 일이 되었습니다. 사춘기에 이르기 전,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찍 이성친구를 사귀는 풍습도 생기고, 매스미디어와 인터넷, 스마트 폰의 영향으로 인기 연예인을 열광으로 선호하는 나이도 점차 어려져서 그런 방면으로 진출하기 원하는 아이들의 나이도 어려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아이답게 보내고 천천히 사춘기를 맞아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는 느긋한 발달 과정을 다 생략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른이 되기 위해 얼마간 기다리는 유예기 시간을 아예 없애고 서두릅니다.

  

그러고 나서 어른이 되고 결혼하고 부모가 되고, 사회생활도 합니다. 참고 기다리는 훈련과 경험이 없이 닥치는 임무를 책임지고 꾸준히 해낼 수 있을까요? 영재라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이 거치는 과정을 훌쩍 뛰어넘어 성취해내는 과업은 이룰지 모르지만, 제대로 성숙하게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며 사는 것은 잘 해내지 못합니다. 영재가 아닌 우리 보통 사람들도 거쳐 가야 할 과정을 차곡차곡 쌓아가지 않고 훌쩍 뛰어넘었을 때 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그랬다거나, 부모가 관심두지 않고 무심하게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의 건강한 원칙과 규모가 없이 함부로 자라게 내버려 둔 가정들을 봅니다. 그런 가정에서 자라면, 뭐든 자기 멋대로 하려 하고, 참을성이 없이 서로에게 쉬 화를 내며, 존중함 없이 서로를 마구대합니다. 그렇게 어른 되어 부모가 되면 또 그렇게 아이들을 기르는 것을 반복합니다. 악순환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다운 어린이 때를 지내고, 사춘기다운 사춘기를 맞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