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가 든든해야!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5강
프로젝트

어떤 살아있는 생물보다 사람은 미숙하게 태어나 환경(양육자, 부모)의 보살핌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두 살배기 아이를 완전히 방치해서 죽게 만든 아버지 이야기가 들립니다. 이 경우에는 살인으로 고소당한다고 합니다. 사람 아기는 돌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버지 되는 사람이 당연히 알고 있었어야 했다고 여기기 때문에 ‘의도한 살인’이라고 검찰이 판단했답니다. 갈비뼈가 열몇 개 부러지게 아이를 때란 계모는 그렇게 때려도 아이가 죽을 거라고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 ‘과실치사’로 판단했던 검찰에서 조금은 아이들 편으로 진전했다고 보입니다.

갓 태어나 얼마 안 된 아이는 충분히 잘 먹이고, 편안하게 잠을 잘 재우고, 순조롭게 배설하는 것이 몸의 생리작용의 기본이니 양육자는 이를 잘 도와야 합니다. 그러기에 아이의 필요를 잘 알아 무리하지 않고 적절하게 잘 보살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도 젖을 잘 빨고, 잠을 잘 자고, 배설기능을 잘 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태어나서 잘 자라야 합니다. 순조롭게 되기 위해서는 아기 자신과 환경 사이에 궁합이 잘 맞아야 합니다. 얼마나 기분좋게 자신과 양육자가 서로를 즐기고 고맙게 여기는가 하는 데 따라 아이와 어른 쌍방이 같이 흡족하게 행복할 수 있거나, 불만스럽게 긴장하게 됩니다.

아이를 낳아 감격스러운 기쁨의 순간은 잠시이고 “힘들다”는 소리를 연발하는 부모들을 주변에서 자주 봅니다. 그러고는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기저귀 갈면서 “바쁘게” 다 잘해냈다고 합니다. 물론 잘 해냈을 겁니다. 그러나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 하는 것이 아이에게 전달되면 똑같이 애쓰고도 아이가 받아들이는 인상은 아주 다릅니다. “힘들어, 힘들어” 하면서 일 해치우듯이 아이를 다루었다면 아이가 어른에게서 받은 인상으로 자기 필요를 채워주는 일은 양육자의 여러 일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해서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을 재워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아이에게는 엄마 (환경)에 대한 신뢰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도 형편없어집니다. 엄마에게 자기는 설거질 보다 못한 존재, 청소 다음에나 오는 존재, 엄마 전화보다 뒷전인 존재, 컴퓨터 게임보다 못한 존재라고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게 됩니다. 물론 첫해에 비롯된 믿음으로 평생의 자신감이 완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시간을 살고 자라면서, 여러 사람들과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삶의 여러 가지 문제 상황을 만나고 풀어 가면서, 자기 자신과 환경에 대한 신뢰도 바뀌고 자라 갑니다. 그러나 바탕이 되는 기초신뢰감(basic trust)은 태어난 첫해에 싹을 틔웁니다.

기초신뢰감이 있으면 다음에 오는 시기마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맞아 움츠러들어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면하게 됩니다. 자신과 환경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두려움이 앞서고, 뒤로 물러서려 하니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됩니다. 뭐든 제대로 보려고도 않고, 들으려고도 않아 문제 정수조차 모르고, 해보려 하지 않고, 못 할 것이라고 여기고, 주저앉으려고만 합니다. 이제까지와 다른 오늘을 제대로 직시해야 합니다. 늘 새로운 때이고, 늘 새로운 환경을 맞습니다. 그리고 늘 새로운 문제를 풀어 가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습니다. 성취해야 하는 ‘일’만 아니고 ‘사랑’도 같은 비중으로 경험해야 합니다.

아기가 자라는 것을 자세히 보십시오. 매순간 아이는 바뀌고 자랍니다. 어느 한 순간에 멈추지 않습니다. 아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겨우 살아남은 어제(과거)와 똑 같이 이제(현재)를 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경험이 쌓이고, 영글고, 지혜롭고, 마음이 넓어지고, 늙어집니다.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바뀌고 있다는 겁니다. 어제만으로 올제(미래)를 재단하려 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현상유지만 하려는 것은 멈춤이고, 멈춤은 죽음입니다. 결국 죽음은 썩어 없어짐을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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