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 소식지(245호)
<핵없는세상 시민모임>
파수꾼들
한제선
핵없는세상(이하 핵없세)에 참여할수록 핵발전소 하나가 없어지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가 겪는 기후위기와 코로나 전염병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무절제한 욕심이 없어져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핵발전소만 해도 값싼 친환경 에너지라며 포장하는 언론 기사나 원전 수출, 소형 원전 개발 정책, 그리고 대통령 후보자의 원전 건설계획 등이 현실적인 유불리에 따라 바뀌는 것을 볼 때면 원망스럽기만 했다. 곳곳에서 쉽고 편하게 돈 벌 수 있다는 욕심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가난하게 살자, 자연과 함께 살자”는 목소리는 작고 힘이 없게 느껴졌다. 이렇게 ‘포기’라는 내 안의 바위와 ‘욕심’이라는 바깥의 바위가 만나면 답이 없다. 바위라고 느끼는 한은 답이 없다.
하지만 핵없세는 이런 나를 그냥 두지 않는다. 막연하고 막막하여 도망갈 준비를 열심히 하였는데 회원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신기하게도 내 안에 단단히 서 있던 바위가 조금씩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계란으로 치는 바위, 시지포스가 등에 지고 계속 올라야 했던 바위처럼 거대한 어려움인 줄 알았던 그 바위가 말이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이번에 대통령 선거를 맞아서 핵없세의 입장을 담은 성명서를 내려고 하는데, 그 회의에서 주저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들 어떤 구체적인 경험이나 청사진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지만 그 회원은 성명서를 내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성명서를 내고 싶어하는 마음도 느껴졌다. 왜냐하면 며칠 동안 자료를 찾느라 애쓰셨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심드렁한 태도였다고 느껴진 모습도 다시 보였다. 이 자리에 억지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부분을 짚어서 섭섭하기보다 뜻이 더 잘 전달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회의에 못 온다고 많이 미안해하고, 못 오지만 회의 자료를 보내고, 멀리 부산에서 참여하기도 하고, 핵없세를 시작하고 참여하고 지키는 회원들, 넓은 안목으로 이끌어주는 귀한 말들... 이런 사람들과 만나고 있는데도 볼 줄 몰랐다. 내 멋대로 포기와 절망으로 치달았다.
세상은 내 마음처럼 들쑥날쑥한 욕망으로 제멋대로이다. 하지만 핵없세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존재해왔다. 2021년에는 한 달도 쉬지 않고 매달 모였다. 핵없세를 향한 기대와 후원하는 마음을 생일날(8월15일) 확인하며 감격하였다. 핵없세는 어린이들, 노인들, 전국 각지의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과 밀양 할매들, 고래와 어민들과 바다생물들, 동식물들, 우리의 욕심으로 힘겨운 지구를 보호하고 싶다. 그래서 팔순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핵없는세상을 위해 모인다. 나 혼자서는 포기할 때가 많지만 바윗덩이들이 보일 때마다 '심호흡하고, 머리 한번 흔들고, 하늘을 쳐다보고' 핵없세 파수꾼들을 떠올리며 힘을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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