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 소식지(252호)
<핵없는세상>
‘핵없는세상’ 가족
한제선
6년여 전부터 남편은 전기 점검하는 일을 한다. 부족한 나의 표현으로 남편의 일을 설명하자면 전봇대가 있는 곳이면 그곳이 산이든, 섬이든, 민통선 안의 군부대든 어디든 가서 특수카메라로 전봇대를 찍어 한국전력에 보고한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길이라면 걸어 가서라도 찍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도시에서는 아파트나 상가건물의 전기시설도 점검한다. 시설이 옥상에 있으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지하실에 있으면 물이 축축한 지하실로 들어간다. 그는 사회학도에서 회사원에 이어서 지금은 전공과 전혀 무관한 전기 점검일을 하고 있다. 어디에서 전기 합선사고가 크게 났다는 뉴스가 나오면 남편은 자기가 점검한 곳이 아닌지 찾아보기도 한다. 힘든 일이고, 힘들어하지만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이 한 말이 내게 의미 있어 여기에 전한다. 건물의 전기 점검을 위해 방문하면 가끔 남편에게 현안(?)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전기세는 왜 이렇게 오르나? 핵발전소는 더 지어야 하는 것 아닌가?” 등등. 내가 아는 범위에서 남편은 자기생각을 적극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가 “핵발전소 더 짓는다고 전기세 떨어지는 것 아니에요. 더 위험해져요”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로서는 굉장한 용기를 내어 말을 한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시설 점검할 때 난처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뿌듯했던 것 같다. 쑥스러운 듯 내게 말을 전할 때 마음의 큰 감동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핵없는세상’이 출간한 <나는 어떤 시민인가?> 에 필자로 참여했다. 그리고 매월 하는 화상모임에는 함께 들을 때가 있다. 게다가 내가 ‘핵없세’의 사무처장을 맡으면서 여러 일로 분주하고 마음을 끓이면 곁에서 지켜보며 슬쩍슬쩍 물어본다. 그러니까 나와 늘 함께하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서 우리는 물을 끓여 먹기로 했다. 말하자니 너무 부끄럽지만 그렇다. 그런데 남편이 보리차를 좋아한다고 하니 힘이 났다. 그래서 내친 김에 함께 김치를 담궈 보자고 했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포장용기 등이 이제는 너무도 큰 짐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든 생각인데 뜻밖에 남편이 호응을 했다. 새삼스레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함께한 ‘핵없는세상’의 가족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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