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백발에 환한 웃음을 간직한 할머니. 문재린 목사의 막내딸. 민주화·통일운동에 헌신한 문익환·문동환 목사 막내 동생. 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 문은희 소장(78)을 만났다.
문은희 소장은 2011년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예담Friend)에서 '한국 엄마'를 말했다. 5년 만에 <문은희 박사의 여자 마음 상담소>(정한책방)를 새로 썼다. 이번 책에서는 문은희 소장이 한국알트루사에서 한 17년간의 상담 기록이 담겨 있다. 한국알트루사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니>에 실렸던 글을 엮은 것이다.
북촌으로 알려진 서울 종로구 계동에 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가 있다. 고만고만한 한옥 골목을 따라 막다른 길에 있는 상담소로 들어갔다. 좁고 오래된 한옥에 30~40대 여성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긴 테이블 끝에 앉아 참가자들과 함께 뜨개질하며 낭랑한 목소리로 대화하는 문은희 소장이 눈에 띄었다.
함께 앉아서 뜨개질하고 싶은 욕구를 뒤로 하고 문은희 소장과 함께 건넛방에 자리잡았다. 여러 사람을 상담하면서 느낀 한국 사회 문제점, 교회에서 의심하지 않는 순종적인 신앙인들, 집단 상담의 장점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문은희 소장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교회는 얽힌 게 많은 장소…개인 여성 돌볼 틈 없어 >> |
- 한국알트루사는 기독교 단체는 아닌데요. 기독교인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나요.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가끔 찾아와요.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이야기하지 못하던 것을 여기 와서 하는 경우가 있어요. 어떤 경우에는 여성 목사님들도 오세요.
- 교회에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굳이 여기 와서 하는 이유는 뭘까요.
교회 내에서 목회자가 상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서양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개인으로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행동 단위가 개인이 아니에요. 자기한테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포함하고 행동해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도 최순실이라는 사람을 포함하고 있죠. 분리할 수 없는 거예요. 남자는 남자대로 포함 단위가 있어요. 군대·대학·지역 같은 것이 흔한 포함 단위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라는 곳이 얼마나 얽힌 게 많은 곳인가요. 직분 있는 사람,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요. 여자라 해도 여자 편을 들지 않습니다. 남편 혹은 자녀 같은, 포함 단위에 따라서 같이 움직여야 하니까 개인 여성을 돌볼 틈이 없어요.
- 포함 단위 외에도 고려돼야 할 부분이 있나요.
목회자 권위주의죠. 우리나라 교회에서 목회 상담한다고 하면 우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벌써 목회자가 질문에 대답을 주려고 합니다. 고민을 들으려 하지 않아요. 그 사람이 스스로 깨우쳐 자기 길을 찾아가게 하지 않고 목사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려 해요. 한국교회는 정말 순수한 기독교라기보다 유교와 혼합돼 있죠. 목사들이 가부장 역할을 합니다. 여성 교인들이 목사하고 상담할 때 자기는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하지 않나요. 한국교회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할 때는 '인격적인' 관계라고 말해요. 루터가 종교개혁했을 때 하나님 앞에 홀로 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교회 안에서 홀로 서는 교인을 만드냐고 묻는다면 아닌 것 같아요. 언제나 목회자 손아귀에 넣고 의존적이고 말 잘 듣는 교인을 만들려고 하죠. 상담이 될 수가 없어요. 대답을 주는 것은 상담이 아닙니다. 스스로 터득하고 깨닫도록 옆에서 부추기고 도와주는 것이죠. 대신 대답해 주는 게 아니거든요.
한국알트루사에는 여러 소모임이 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뜨개 모임이 한창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 보통 상담이라고 하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받고 온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자기 문제는 자기가 고민해야죠. 자기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상담하던 중에 엉뚱하게 문제가 아닐 수 있어요. 한 번 눈을 뜨게 하면 그 이후에는 자기 혼자 해 나가는 데 별문제가 없죠. 생각하는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걸 도와주는 것이 상담이에요.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게 하고 대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인 셈입니다.
<< 의심하지 않고 어떻게 깨우치나요? >> |
- 교회 내에서 목회자 개인 문제가 생길 때 보면, 지나치게 순종적인 교인을 목격합니다. 이런 분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저는 하나님에게는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마치 그 순종이 내 어머니·아버지에게 순종했던 것 같은 순종이라고 생각하니까 결국 목사에게 순종하는 겁니다.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한테 순종하는 것이냐고 깨우치게 해야죠. 그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믿었던 게 제대로 믿은 건가'라고 고민하기 시작하죠.
- 아직도 많은 교회에서는 의심하거나 의문을 가지면 신앙이 안 좋아서 그러는 것이라 말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지난주 우리 교회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 씻어 준 본문을 함께 읽었어요. 예수님이 베드로 발을 씻어 주려고 하니까 베드로가 "제 발은 못 씻기십니다"고 하죠.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너의 발을 안 씻겨 주면 너와 나는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시니까, 그 뒤로는 머리·손까지 씻어 달라고 하죠.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를 깨우쳐 가는 분이에요. 우리가 의심하지 않고 어떻게 깨우치나요. 지금 가지고 있는 자기 생각의 틀만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요. 우선 아담과 하와부터 그렇게 하지 못했죠. 인간적인 판단으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순종하게끔 만들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순종할 수 없죠.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들을 순종'시킨다'고 생각해요. 때리기도 하고, 야단치기도 하고, 큰소리 질러서 억지로 순종하게 하는데 그게 진정한 의미의 순종은 아니잖아요. 부모 뜻을 아이가 깨우쳐서 순종하는 건데 하나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그 수준으로 이해할 수 없어요. 처음부터 하나님 뜻을 깨우치고 순종한 성경 인물은 없었거든요. 인간적인 순종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같은 것이라고 등식화한다면… 저는 교회가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한다고 생각해요.
- 생각해 보면 교회가 오랫동안 불가능한 일을 한 것 같습니다.
맞아요. 사실 교회 내에서 사람들이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억지로 하는 교회가 많지 않나요. 전통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목회자를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뜻을 모르고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거잖아요. 저는 깨우치는 과정 중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교인들 사이에 소통하고 이해하는 가운데 성령이 함께하셔야죠. 전 상담할 때마다 이런 부분을 늘 생각해요. 내가 무슨 좋은 말을 한다고 상대방이 단번에 알아듣는 건 아니에요. 비슷한 경우를 많이 경험했거죠. 제대로 소통하려면 스파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해요. 우리를 하나님 형상으로 지으셨다고 하는 말이 그런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한테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문은희 소장은 한국교회는 유교와 혼합됐다고 설명했다. 목사가 가부장 역할을 하는 이유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 소장님에게 '성령의 역사'라는 단어를 들으니 새롭습니다. '성령'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이적을 일으킬 때 많이 사용되는 단어로 자리매김했어요.
영혼의 섬세한 움직임이나 변화를 말할 때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베드로와 예수님 관계에서도 성령의 역사를 목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 신앙생활도 그렇고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과 위주로 판단하기 때문에 행동이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러니까 아주 율법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많은 것 같아요.
- 문익환 목사님 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 목사님 활동만 보고 정치적이라고 하거나 심지어 '빨갱이'라는 단어도 붙였죠.
저는 단지 일하는 영역이 달랐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오빠가 활동하던 자리에도 성령의 역사가 있었겠죠. 어떻게 성령과 상관없이 행동만 할 수 있겠어요. 지금 한국교회는 아예 두 개로 나누는 것 같아요. 오빠를 대변할 생각은 없지만 딱 구분해 평가하는 사람들이 결국 드러난 행동만 본다는 거죠. 행동 결과만 보고 신앙생활 같은 드러나지 않는 것은 보려 하지 않아요. 우리 문화가 너무 눈에 보이는 것 위주로만 생각하는 게 문제가 있는 부분입니다. 사실 영혼이나 마음을 이야기하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이야기해야 하죠. 교회도 청년들의 신앙을 말하려면 숫자보다, 한 청년이 어떤 고민을 안고 있고 그걸 정죄하려고만 하지 말고 제대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예전에 한 소설가가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정치적'이라는 말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안전하게 사는 정치성을 선택한 거니까요.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등에 눈을 감는다면 어느 한편의 정치를 옹호하는 거 아니겠어요.
<< 여성으로 사는 경험은 특별한 것 >> |
- 이번에 새로 나온 책 제목 <문은희 박사의 여자 마음 상담소>도 그렇고 그동안 여성 상담을 전문적으로 했습니다. 여성 상담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우선은 내가 여성이고 여성으로 사는 경험은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어느 나라에서나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다 특별하죠. 그래서 여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1960년대 미국에 유학 갔는데 여성해방운동이 막 활발할 때였어요. 운동 현장에도 가 보고 관련 책·연구물이 이미 많았어요. 여성학 청강도 많이 했고요. 그러다 1967년에 결혼했는데 처음 남자와 살아 보면서 갈등이 컸죠. 결혼한 첫해가 참 힘들었어요. 남편도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와 밀접하게 살아 본다는 게 둘 다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러면서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생각이나 느낌이 다르구나' 이런 걸 깨달으니까, 자꾸 공부하게 되고 관찰도 하게 되더라고요. 나를 또 해석해 보려고 하기도 하고요. 50살 넘어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서양 어머니와 우리나라 어머니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 연구를 했어요. 자연스럽게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성들을 대하기 시작한 거죠.
문은희 소장은 1960년대 미국에서 공부할 때부터 여성 문제에 관심을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전문적으로 여성들과 상담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 개인 상담도 하시지만 집단 상담도 꾸준히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집단 상담이 어떤 점에서 좋은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여러 명이 상담을 할 때 좋은 것은 서로의 거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상대방에게 듣고 그 이야기 속에서 나를 비춰 볼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하죠. '사람이란 다 자기 욕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 대화하면 전혀 다른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거죠. 집단 상담을 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각자 거울이 되는 효과가 있어요. 나만 경험한 줄 알았던 일을 다른 사람도 경험했다는 걸 알게 되죠. 물론 사람마다 개별적인 차이는 있지만, 혼자 품고 있던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는 데서 안심하죠.
- 자칫 서로 위안만 받고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위안받고 거기서 멈추면 사실 소용이 없어요. 언제까지 자신을 피해자로 가두면 안 됩니다. 자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첫 단계를 열기는 했는데 그 다음 단계로 가야죠. 피해 입은 내 모습이 나의 전부는 아니라고 인정해야 해요. 나는 더 다른 경험도 많고 풍부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해요.
- 소장님 책에 보면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라'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최근 낙태 관련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에게 일부 남성들은 '이기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했는데요. '소중하게 여기고 살라'는 말을 조금 더 풀어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낙태 관련 논란을 보면 국가정책이 얼마나 여성을 도구로만 생각하는지 나타납니다. 옛날에는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라고 하더니 지금은 많이 낳으라고 하죠. 지금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것 자체가 얼마나 커리어에 불리한지 다 알면서도요. 소중하게 여기라는 의미는, 우리는 하나님 형상이라는 데서 시작해요. 하나님이 이미 내가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라고 나를 봐 주시죠. 그러면 내 삶에 대한 책임도 있고 다른 사람도 나만큼 소중한 사람이니까 함부로 대할 수 없죠. 내가 남을 도구화할 수 없는 관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낙태를 좋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낙태를 결정해야만 하는 여성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를 국가도 알아야 해요. 국가도 한 여성을 소중하게 여겨야지 인구수만 생각하고 아이 낳으라는 건 소중하게 여기는 게 아니죠. 소중하다는 것은 자신이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기 때문에 이타적이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해요. '알트루사'라는 이름도 '이타주의'라는 알트뤼즘(altruism)에서 나온 말이거든요. 나만을 위해 이 세상에 사는 건 원시적인 도덕성이에요. 예수님 말씀대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 그렇게까지 나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의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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