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9강
프로젝트

새해 맞아 새삼 사춘기를 맞는 우리의 후예들을 미안한 마음으로 가슴 아프게 지켜봅니다. 내 아이들은 그 시기를 넘기고 이제 중년이 되었지만, 이 땅에서 자라는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보면서 죄스러움을 느낍니다. 자기만의 벅찬 꿈을 가지고, 각기 저마다 별의 별 인생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 아이들이 마음껏 날개 짓해 날 수 있는 확 트인 공간, 사회 문화를 만들어 줬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건강한 정상의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주는 사회에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정직한 마음과 행동이 어수룩하다 걱정거리 되지 않고, 착한 이웃이 되는 것을 기뻐하기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착한 아이가 “어이구 이렇게 착해서 어떻게 살 거냐!” 걱정하는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게 되어야 합니다. 규칙을 잘 지키고 부지런한 아이를 고지식하다며 “꽉 막혔다” 구박하지 말고, 바른 길을 걷는 것을 손해라 여기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낯을 들지 못하고 고개 숙이다가도, 비싼 변호인의 조언을 받으며 난데없이 “억울하다” 소리 지릅니다. 법을 지키고 책임져야 할 약속을 철저히 지켜야 할 힘 가진 사람들이 “나는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하며 발뺌하기에 급급합니다. 이들이 바로 IQ가 유난히 높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랍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서 어떻게 공평하고 정의로운 앞날을 꿈꾸겠습니까? 당장 힘 있고 돈벌이 되는 직업을 얻기 위해 공부하려 하고, 그런 전공을 하기에 공부 능력이 모자라면 아예 포기하고 학교에 가도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며 시간을 때웁니다. 성적이 좋은 아이나 나쁜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자기다운 삶을 자기가 선택하지 않게 만든 겁니다. 그 신통치 않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태를 따라 맞추어가려고만 합니다. 우리가 죄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네 사춘기는 다양한 꿈을 꾸지 못하는 시기로 전락했습니다. 너무나 서글픈 비극입니다. 섹스피어의 비극에 비교가 되지 않는 아주 무참하리만큼 비참한 비극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두 사람만이 비극의 주인공입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어느 누구 예외 없이, 모든 백성이 다 비극의 주인공입니다. 어느 누구도 두 번 세 번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꼭 한 번 태어나 살고 있습니다.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이 마음에 흡족한 자기만의 삶을 책임지고 살게 해야 하는데, 우리네 어른들은 그 것을 참지 못합니다. 문신을 해도, 자기 몸에 하는 겁니다. 머리 염색을 해도 자기 머리이지 엄마의 머리가 아닙니다. 

 

거리에 악사가 되어도 좋다며 물리학과에서 음악으로 전공을 바꾼 내 큰아이에게 우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제 네 살짜리 내 손녀는 발레하는 고생물학자가 된답니다. 그 애는 지금부터 열심히 춤 연습을 하고 있는데 “그거 해서 밥 먹고 살 수 있겠니?” 하지 말아야지요. 스스로 만든 정체감 (self-made identity)을 현실에서 이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회는 복잡하고 경제구조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독자성과 솔선의 덕목이 튼튼하게 자라고 유지되어야 합니다. 아이들 각자 혼자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 체제가 뒷받침해주어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제도를 바꾸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마냥 익숙한 생각에 머물러 있으면서 아이들더러 적응하기만 하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세월호 속에서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 했던 어른들이 아이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우리 모두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파했습니까. 우리 아이들 “땅위에서 숨 쉬고 살 수 있으니까 괜찮다고요?” 아닙니다. 몸으로는 살고 있어도 마음으로는 질식하게 할 수 있습니다. 기를 꺾고, 숨죽이고, 고개를 느려 한 없이 아래로 떨구고, 살맛을 잃습니다. 우울증에 걸리고, 게임에 빠지고, 술과 담배, 그리고 마약으로 서서히 자살의 길을 걷습니다. 곁에 있는 친구의 아픔을 공유할 여유도 없습니다. 아픈 친구들이 서로 알아주고 살 길을 같이 찾아갈 수 있다는 것도 모릅니다. 조절을 모르는 욕구의 노예가 되기도 하고,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가족, 이웃, 친구들에게 한 없이 잔인할 수 있게 됩니다. 우애는 찾아볼 수 없고, “같이 산다”는 개념이 아예 생기지 않습니다. 서로 헐뜯고도 서로 자기만 아프다고 아우성입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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