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수원에서 하는 인문학 교실에서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좋은 ‘길잡이 어른’ 엄마에 대해 생각하면서 목이 쉬도록 이야기하고 왔습니다. 아이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아이를 아프게 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어른이 되어 기쁘게 살 수 있도록 고룻하게 잘 갖추는 것을 돕는 길잡이 어른들이 필요합니다. 아이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럴 차비를 하고 살아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이와 관련된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기 아이에게는 군인을 훈련시키는 사람이나 감옥의 간수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엄마들을 많이 보아왔고, 그런 교사를 아주 많이 만납니다.
좋은 길잡이는 마음이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신임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경직되고 무서워서 꼼짝 못하도록 얼어붙게 하는 어른은 아이의 마음을 동사시킵니다. 아이를 꽃피게 하고 열매 맺게 하지 못합니다. ‘재미’와 ‘일’이 잘 섞여 번갈아 할 수 있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재미로 시작하고 일을 이루고, 또 다시 재미를 불러오고 하면서 지루함을 모른 채 한 뼘씩 성큼 자라게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잘 알아보고 적합하게 노력하도록 부추길 줄 압니다. 그리고 그렇게 애쓴 것을 알아봐주고 그렇게 알아봐준다는 것을 아이들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언니들이 집 바깥으로 나돌아 다닐 때 어린 막내가 바쁘신 엄마 대신 묵묵히 오빠의 밥상도 차려주고 할 만큼 했는데 엄마는 한 번도 알아주시지 않았다는 것이 억울하기 그지없어 눈물 없이는 말을 잇지 못합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한 것은 알아주지 않고 다른 아이가 한 것은 알아주는 교사가 있습니다. 교사의 눈에 들려고 애쓰는 위험한 태도를 익히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건 말건 옳은 길을 걷고 열심히 바르게 살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권위자의 눈에 들어 점지받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만들게 합니다. 좋은 길잡이 어른은 어른 말만 잘 듣고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즐겁게 잘 지내는 것을 격려합니다. 윗사람에게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두터운 우애를 길러줍니다.
이렇게 자라면 열등감이 생기질 않습니다. 앞으로 뭘 하든 어떻게 살든 자신 없어하는 열등감이 생기질 않습니다. 성적이 좋고 나쁜 것으로 가름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엄마 치맛바람으로 정당하지 않게 인정받아 온 아이들은 혼자 해낼 자신이 없습니다.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대하지 못하고 죽는 날까지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게 됩니다. 그리고 불안해서 재미건 일이건 도통 삶을 즐길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의 주변에는 이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 ‘자칭 길잡이’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의욕 상실증에 빠뜨립니다. 정부는 이런 어른들을 정리할 생각은 않고 정신질환 기준 강화로 가벼운 우울증은 질병이 아니고 사회현상이라고 얼버무릴 작정입니다. ‘관계 맺기’에 미숙한 어른 때문에 아이들은 관계를 전혀 경험해 본 적도 없는데 가벼운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하라고 할 것인지 암울합니다. 길잡이 어른은 제대로 없는데 아이들이 어떻게 제 삶을 찾아 나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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