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6월호(249호)
<화요모임>
4월 12일
‘인권의 역설’을 넘어
이인미
이른바 ‘인권의 역설’이라 칭할 법한 어떤 현상이 있다. 우리가 흔히 천부인권을 떠올리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권을 보장받는다고 또는 보장받아야 한다고 확신하지만, 우리의 비천한 사회현실을 진지하게 둘러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흠칫 깨닫는 상태를 가리킨다. 예컨대, 난민은 떠나온 나라(모국)에서도 머무는 나라(타국)에서도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기는커녕 심지어 요구할 자격이 없어 난처하다. 다시 말해, 한 나라 국민이거나 한 사회 시민이어야 인권을 주장할 수 있고 그 주장이 일반적 설득력을 갖춘다는 이야기이다.
제 나라를 떠난 이들은 말하자면 모든 나라의 국경 바깥에 존재한다. 뿌리 뽑힌 상태이다.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나, 그리고 그 사람이 인간임에 틀림없으나, 그 사람에게 인권이 있다고 간주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같은 우리의 남루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인권의 역설’은 마침내 더 높고 묵직한 ‘뜻’을 반드시 우리에게 전달해주고야 만다. 어떤 사람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이웃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의 인권이 바로 그 공동체 범주를 통해 주장되고 보장받을 수 있다는 진실 말이다. 나는 알트루사 ‘난민과함께살기’가 이웃 되기 활동을 통해 공동체 범주를 넓히고 강화하는 사업이라 믿는다.
실제로 ‘난민과함께살기’에서 주최한 4월 화요모임(루렌도-바체테 가족 초청)은 이웃 되기 활동의 한 장면이었다. 콩고 출신 앙골라 국적의 루렌도-바체테 가족(총 6명)은 2018년 연말, 한국에 입국했다. 아니, 인천공항에서 정지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들은 무려 287일 동안 46번 게이트에 머물렀고, 그 기간 동안 출발지(앙골라)와 도착지(대한민국) 모두에서 인권을 거부당했다. 2019년 여름, ‘난민과함께살기’ 사업 차원에서 46번 게이트에 방문하자는 제안이 나왔으나 불발됐다. 그 가족을 만나려는 목적 하나만으로는 그곳에 접근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윤재오 모람 가정이 해외 출국길에 46번 게이트에서 그 가족을 만났다.
2020년이 시작되자마자 코로나19가 발발했고 곧 팬데믹이 들이닥쳤다. 그래도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던가! 4월 12일에 알트루사 모람들이 마침내 루렌도-바체테 가족을 만났다(온라인 화상모임). 언어가 달라 소통이 다소 꺼끌꺼끌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귀와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한국 개인과 학교 및 정부에 대한 그들의 느낌, 좋아하는 음식과 건강 문제, 일자리에 대한 고민 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콩고에 남은 친척들의 안부를 물었는데, 바체테 씨의 여자형제가 사망했으나 비용부족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는 아픈 사연을 말해주기도 했다.
태어난 곳을 떠나왔든 태어난 곳에 계속 살든, 사람은 이웃과 함께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어 자기의 느낌과 고민, 그리고 아픔을 나누는 만남(대화)을 누릴 권리가 있다. 나는 그것을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고 확신한다. 아울러 알트루사 ‘난민과함께살기’가 바로 그 보루 역할을 하기를 나는 소망한다. 소위 ‘인권의 역설’을 넘어, 알트루사라는 대화공동체에 함께 소속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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