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결단을 사춘기에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11강
프로젝트

지난 금요일, 3월 10일, 잔뜩 숨죽이고,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보았습니다. 보통 오후에 일어나는 박 선생도 11시, 시간 맞춰 일어나 같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처음 일어난 커다란 사건을 실시간으로 보아야 했습니다. 아무 것도 놓치지 않으려 그보다 일찍 일어나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 알아두려 채널을 바꾸어 가며 온갖 해설을 듣고 또 들은 참이었습니다. 한 시간은 끌 것이라던 예측과는 달리 22분에 가볍게 끝났습니다. 그리 될 것이라 믿었지만 가슴을 쓸어내리고도 하루 종일 TV앞을 또 지켰습니다. 

 

여기 우리 사무실 가까운 곳에서는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탄식과 과격한 움직임이 계속 보도되었고, 침묵하는 청와대가 마음 쓰이기도 했고, 양측의 반응, 각 당의 대응, 시민들의 흥분한 환호와 눈물의 뒤범벅은 모두 뉴스 꺼리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두 여인이 대조되어 만화감이 되었습니다. 헌법 재판소장 역을 맡은 이정미 판사가 아침 일찍 차에서 내려, 언제나 하듯 취재진에게 허리를 약간 굽혀 인사하며 건물로 들어서는데 머리 뒤에 분홍 머리 손질 도구가 두 개 달랑 달려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여자이기 때문에 봐주어야 한다는 변호사의 특별 주문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피부 손질과 함께 머리 손질을 위해 심하게 마음 쓰는 그 여성이 없었다면, 특별히 안타깝게도 ‘세월호 7시간’이라는 미스테리를 벗기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올린 머리’를 위해 바깥에서 미용사를 불러야 했던 ‘머리(hair style) 강박증’의 그 여인이 없었다면, 우리 모두는 그냥 바삐 서둘러 온 여성 이정미님의 실수라고 웃어 넘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인이 된 지금도 자기편 변호사는 집에 들이지 않으면서도 예의 그 미용사들은 집에 들여 한 시간을 같이 보냈다고 들립니다.

 

이제 우리는 두 여인을 비교해야 했습니다. 제대로 된 멀쩡한 민주국가를 군대의 힘으로 차지한 아버지의 딸로, 공주 아닌 공주로 청와대에서 사춘기를 보낸 여인을 마음 한 편에 세워봅니다. 그리고 수학을 잘하지는 못해도 수학이 좋아 수학선생이 되고 싶었던 여고생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그 때 10월 26일을 지나면서 나라가 어수선한 것에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사회의 움직임에, 나라를 제대로 만드는데, 질서를 지키고 안녕을 유지하는데 깊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여학생은 법학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의 힘에 기대서 사춘기를 보낸 여인과 자기 관심을 무시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겨, 스스로 해내려는 생각을 하고, 실천하려는 여학생의 차이를 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기구한 운명이라며 팔자로 풀이하려 합니다. 김재규의 이름조차 들먹입니다. 한 편은 그로 해서 아버지를 잃게 되었고, 또 다른 편은 법관이 될 결심을 하고, 오늘에 이르러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파면하는 판결을 내렸다며, 기구하고 대단한 일이라 혀를 찹니다. 그 두 사람만의 사춘기가 대단한 문제로 보이나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겁니다. 어떤 가정에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며 살 것인가를 스스로 결단하고, 실행하며 사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길을 성실하게 걸으면서 해야 할 일을 하고, 갖추어야 할 마음을 품으며, 서두르지 않고 균형 잡힌 삶의 과정을 거쳐가야 합니다. 

 

이 중요한 때, 사춘기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자기 삶에 책임지는 충실함을 오히려 우습게 여기는 청소년들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냥 당장의 재미를 추구하고,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고,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별도리 없이 겨우 따라 하는 것 같아 보여 안타깝습니다. 결국 자기 삶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다고도 여겨본 적이 없는 듯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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