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의 돌에 아이 외할머니와 우리 가족이 둘러앉아 밥 먹고 케익을 나누는 사진이 있습니다. 알트루사에서 같이 사진을 보는데 우리 가운데 누군가 사진 속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아이에게 몰려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가족과 환경의 마음을 사로잡은 위치에서 자랍니다. 뜨거운 것을 조심해야 하고 주어진 조건에서 어른들의 말을 알아들어가며 여러 가지 자기 문제를 풀어갑니다. 플라스틱 아기접시에 주는 음식보다는 어른들과 같이 도자기 접시에 음식을 먹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플라스틱 접시같이 밥상 밑으로 접시를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익힙니다. 어른들이 커피나 차를 마실 때 아이는 물을 마시는 시간입니다. 식사 중에 어른들이 포도주 마실 때에도 아이는 물을 마십니다. 아이 혼자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환경과 교섭하며 원하는 것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익혀갑니다. 어른 마음대로 아이를 주름잡는 것도 아닙니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 나이의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알아서 서로 맞추어주는 겁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무시하고, 양육하는 사람이 대신해주기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기에 아이를 돌보는 어른들이 아이의 발달 단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 시절에만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우리 누구나 발달하고 바뀌며 삽니다. 프로이드는 어린 시절을 어떻게 지냈는지 하는 것이 평생을 가름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에릭 에릭슨은 평생 삶의 주기를 눈여겨보았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여성들의 정신건강에 관심 두고 보면 나중까지 바뀌어 건강하게 나머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하는 에릭슨의 생각이 고맙기도 합니다.
삶의 특정 시기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풀 해결책을 찾아내야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같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놔두고 있기만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숨쉬고,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배고프다고 울어야 합니다. 따스한 엄마 품에 안겨 안심하고 젖을 빨 수 있어야 합니다. 엄마 냄새를 익히고 그 냄새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을 만한 사람과 믿을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해야 하는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앞의 시기의 문제를 제대로 풀어야 다음에 오는 시기의 문제를 잘 풀게 됩니다. 각 시기마다 당면한 문제를 풀 수 있는 건강한 방식들은 서로 연관이 있습니다. 보기를 들어 첫해에 해결할 과제인 ‘기초신뢰감’은 두세 살에 해당하는 다음 시기에 이루어야 할 과업인 ‘독자성’과 관련이 깊고, 또 그다음 너덧 살에 올 ‘솔선’과 뗄 수 없는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감 있게 자기 삶을 책임지는 삶과 끊을 수 없는 정신건강 과제가 됩니다. 후회 없이 눈을 감을 수 있는 마지막 날까지 든든한 바탕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각 시기에 갑자기 그 문제가 구분되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시기 전에도 덜 발달된 가능성과 필요를 잠정으로 지니고 있습니다. 독자성의 과업을 분명하게 들어내기 전에도 아기는 독자성을 구가합니다. 자기 얼굴을 할퀼까 봐 꽁꽁 싸매놓은 손을 풀고 싶어 아기는 손을 꼬물댑니다. 그러나 의존성과 독자성을 뚜렷하게 구분하고 선택하고 싶어하는 시기가 되어야 분명하게 임계점이 나타납니다. 은유와 동화 그리고 영준, 혁빈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아이들의 욕구와 필요를 잘 아는 환경이었는지 반성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얼마나 아기 때에 우리에게 주목하고 계셨을까 질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학교와 사회, 그리고 직장 동료, 상사와 이웃, 시댁과 우리 아이들의 삶의 주기에 어떤 판도가 전개 되었던가 생각이 많아집니다. 서로 마음을 다해 성의있게 함께 살아왔던지 성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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