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인간관계를 알고 사나?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8강
프로젝트

일흔다섯 해, 짧지 않은 시간을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배신당한 경험을 여러 차례 가져봤습니다. 그것도 나와 아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지난 주일 교회에서 시편 58편을 같이 읽으면서 자기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저주하는 시인을 만났습니다. 그의 저주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때 가까웠던 사람이 자기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저주하는 것이 허용될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금 한 소설 읽기를 마쳤습니다. 십대 청소년 암 환자 둘의 사랑이야기입니다. (마침 박선생이 집에 없을 때 읽게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마음껏 눈물을 흘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깊이 울린 것은 나을 수 없는 암에 걸려 죽어가는 젊은이에 대한 슬픔만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말의 ‘죽-’만 나와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사람이지만 진정으로 감격스러웠던 것은 먼저 죽을 남자 아이가 나중에 죽을 여자 친구를 위해 애도문을 써달라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작가에게 부탁하는 글을 읽으면서 였습니다. 물론 자기가 죽은 뒤에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고 잘 살기를 원하는 딸의 마음을 서로 알아듣고 보살피는 부모와의 대화 장면도 눈물이 가로 막아 읽기 힘들었지요.

자기의 아픔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원수의 마음까지도) 같이 생각할 수 있다면 원수를 저주할 마음이 생길까요? 놀라운 것은 이런 마음이 어린 시절에 아이와 양육자 (엄마 역할 하는 사람) 사이의 안정된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기농으로만 잘 먹이고, 아토피가 생기지 않을 옷만 입히고, 공해가 없는 곳에서 기른다 해서 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괜찮아!”하는 마음,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 있어도 “자기답다”는 것에 마음이 편할 수 있는 ‘아이-엄마’의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다음에 올 발달 시기마다 자기답게 풀어갈 수 있고, 그렇게 믿을 수 있는 관계를 맺어갈 수 있습니다.

결혼하고 보니 친정어머니의 변덕스러운 모습보다 안정되어 보이는 세련된 시어머니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니를 만났습니다. 눈에 거슬리는 아이의 행동을 보면 (아이다운 행동인데도) 시어머니 기준으로 시어머니 흉내를 내면서 억지로 참으며 조용히 타일러봅니다. 두 번 세 번까지 되는 것 같다가 그 다음에는 “빵” 터집니다. 친정어머니가 자기를 사랑했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답니다. 마음껏 사랑받았고 불만도 없었답니다. 문제는 안정되어 보이는 시어머니 기준으로 보니 친정어머니가 변덕스러웠던 것일 뿐입니다. 그 니에게 “걱정하지 말라”했습니다. 아이들 마음만 알아주면 엄마의 진정을 아이들도 알아줍니다. 아이는 엄마가 필요하고,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니까요.

이런 엄마가 없이 자란 많은 여성들을 만나 같이 아픔을 나눕니다. 아무리 식구가 많아도, 그 많은 형제자매들 사이에 막내로 태어나도 서로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다면 아무리 나이 먹고 사회경험을 능숙하게 쌓아도 ‘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생존을 위해 가면을 쓰고 “잘 지나는 척”해야 합니다. 매력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여러 사람들 틈에서 연기를 하고 나면 기진맥진합니다. 서너 시간 할 수 있답니다. 그러고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그러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터에서 매일하는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24시간 아내 노릇, 엄마 노릇은 더더욱 턱도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헛고생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애쓰는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복(人福)이 없다”고들 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가면을 벗고 살아도 되는데 맨 얼굴로 대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직접 마음을 털어놔도 되는데, 뒤에서 불이 나게 전화하고,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작당합니다. 그 사람들과 친한 관계를 만들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뒷담화할 대상을 공유한 것뿐이지, 서로 마음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관계는 맺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서로 믿고 성의를 다해 마음을 알아주며 같이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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