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스스로 책임지는 개인으로 살기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6강
프로젝트

EBS에서 학교 폭력에 대한 특집 프로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측면으로 여러 차례 다룰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어제 다룬 것은 폭력의 피해자들이 얼마나 오래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폭력의 문제상황은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 모두가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피해자가 제일 괴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 그 사람의 느낌을 모르는 가해자의 냉담과 무감각함이 자연스럽고 건강한 환경에서 비롯되었을 리 없기 때문에 그 역시 피해자입니다. 폭력이 진행되는 환경에서 함께 지내면서 직접 당하거나 가담하지 않는 제 삼자들도 피해자입니다. 조사연구 결과에 의하면 직접당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방관자도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고 합니다. 집안에서 자신은 맞지 않으면서 언니들이 당하는 것을 곁에서 보면서 자란 모람의 경험담을 기억합니다.

이렇게 다같이 환경에 치우치는 쏠림 현상 때문에 아이들이 물들어 마음이 망가지게 됩니다. 살아남기 위한 방편인데 상처가 큽니다. 사춘기에는 자신의 됨됨이가 확립되는 때라서 남다른 자신의 특징을 구분하려 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남다르게 자신을 지키는 것 보다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모나지 않기를 부추기기 때문에 더욱 환경에 매몰되고 구분 없이 물드는 것이 가치기준이고 처세술인 양 생각합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는 규격화된 형식과 보이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는 풍토라서 동질의 갖춤이 손쉽습니다. 성형수술이 성행하는 점에서 단연 일등인 것도 이렇게 설명이 됩니다. 명품이 다른 나라보다 비싸도 잘 팔리는 것도 같은 현상입니다.

자신의 속내가 저마다 다른 것을 스스로 알아주고 인정하고 자랑스럽게 기뻐할 의도를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수진이가 다니던 학교 이번 해 졸업생 90%가 재수한답니다. 수진이를 빼고, 재수하려는 그 많은 학생들은 그렇게 많은 숫자가 같은 길을 택했다는 것에 오히려 위로받고 안심할지도 모릅니다. 남다른 좁은 길을 찾으려 하지 않고 다같이 행진하는 넓은 길에 몰려가려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자신만의 느낌, 생각을 살리며 자신만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면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궤도를 벗어나 어긋난 길을 가다 보면 자신의 정체성에서 아주 멀리 벗어나게 됩니다. 자기만의 ,색깔과 삶의 맛을 잃게 됩니다. 인생의 종결지에 이르렀을 때 얼마나 허망할까요?

어느 중학생이 그린 자신의 뇌구조가 기막힙니다. 가운데 ‘컴퓨터’가 떡하니 자리잡고, 간간히 ‘공부’가 끼어 있고는 거의 전체가 ‘돈’, ‘돈’, ‘돈’으로 가득 채워있습니다. 그 아이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마다 다른 꿈과 이상이 아름답게 채워져야 할 뇌(마음)가 돈으로 가득 차 있는 끔찍한 현실을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법조인, 그것도 현법재판소 소장 출신이 6살 7살짜리 아들들을 수억의 재산 소유자로 만들어 놓는 사회가 장본인입니다.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는 기본인 나라입니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서 흥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친구의 아픔쯤은 문제도 되지 않게 됩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보이지 않는 것에는 전혀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학위를 받아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춘기를 심각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완전히 거듭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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