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에게 기억이란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 발달단계'를 따라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1강

내가 팔순이 되는 해입니다. 앞으로 살 시간이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아주 짧아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야 알았느냐?” 물으면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 모임을 어여삐 봐주시던 어른들이 몇 달 사이로 두 분이나 떠나셨습니다. 심치선 선생님과 김현자 선생님이 연달아 가셨습니다. 십 년쯤 앞서셨으니 이제 제 차례라는 생각을 합니다. 떠날 날을 기다리는 늙은이의 마음 꼴입니다. 지나온 날들이 결코 짧지 않은데, 그리 길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제야 늙은이 삶이 어떤 것인지 가늠해보려 합니다. “내가 누구로 살아왔는가?” 분명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두부 모 자르듯 손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긴 지난 날이 차곡차곡 쌓이고 겹쳐서 오늘에 이른 것이니 오늘의 삶이라고 별다를 것 없이 뒤따라 겹쳐진 연속이라 해야겠습니다.

 

여기서 어떤 이의 꿈 이야기를 소개하려 합니다. 그는 꿈속에서 여행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아주 마음에 드는 호텔 방에 들었답니다. 돌아오는 길에 같은 호텔에 들러 마음에 쏙 들었던 그 방을 다시 찾았답니다. 그런데 안내를 받고 보니 아주 어둠침침한 방이었더랍니다. 프론트 데스크에 가서 옛날 방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어느 방인지 알겠다면서 호텔 주인이 한 말입니다. “당신이 찾는 방을 압니다. 그 방의 이름은 ‘기억’입니다”라고 했답니다.

 

그 꿈이 우리의 이제의 삶을 말해줍니다. 어둠침침한 오늘의 삶은 기분좋게 환한 어제의 삶의 내용을 기억하는 것과 이어져있습니다. 어제의 많은 날들과 오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잇대어있다는 것입니다. 내게는 오늘이 이제까지 팔십 년 삶을 기억하는 끝자락입니다. 나만이 아닙니다. 여든 해 동안 나와 얽혀 같이 산 모든 이들과 또 이들과 함께한 온갖 역사가 있습니다. 여기 같이 이글을 읽고 있는 니들과도 함께 나의 ‘기억’의 방에 또 한 자락 사연을 심어놓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지난날의 ‘기억’의 방과 연결되어 존재합니다.

 

이미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지 않은 내 할머니에게 얼마나 느긋하고 귀한 사랑을 받았던가 오늘의 내가 기억합니다. 얼굴을 내편으로 하고 주무시라 주름진 할머니 얼굴을 내 조그만 손으로 돌려놓았던 기억이 오늘의 나를 한층 귀하게 해줍니다. 할머니와 나의 그런 모습을 곁에서 내려다보시던 아버지 어머니의 표정도 기억합니다. 두 분이 어린 나를 할머니 품에 맡기시고 흡족해하신 것을 압니다. 사랑의 품에 맡기셨으니 걱정할 것 없었다는 걸 지금 나는 압니다. 혼자 곧잘 걷는 동주와 어제 “Hi five!" 하면서 느낀 마음은 먼 훗날의 동주와 지금의 내가 기억할 겁니다.

 

문 할머니가 죽으면 슬플 거라던 다섯 살 동화는 나와 각별한 기억을 공유합니다. 나는 간절한 동화의 기도 속에서 평화롭습니다. 그 나이에 나는 할머니를 떠나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간도의 어머니셨던 할머니는 아주 큰 장례를 누렸습니다. 그 많은 손님을 다 울린 다섯 살 아이가 바로 나였기에 아주 유명한 이야기로 두고두고 입에 올랐습니다. 언젠가 내 조카 영금이가 “고모, 그때 정말 슬펐어요?” 물은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기막히게 슬펐는지 말하면서 70여 년 지나 할머니가 되어서도 목메어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소꼽동무, 유치원과 교회에서 만난 수많은 동무들과 어른들과 얽힌 관계에서 겪은 기억들이 아직 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억의 방에 있는 한 지나간 과거의 삶의 흔적으로 남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나를 풀이하고 만들어가는 힘으로 살아있습니다. 아버지 등에 업혀서 임진강을 건너 온 깜깜했던 밤을 기억합니다. 노환으로 누워계셨던 정재면 목사님의 마지막 모습, 품위와 인자함을 잃지 않으셨던 표정을 일곱 살 내가 대했듯이 여든이 된 지금도 기억하는 것을 감사합니다. 뒤에 큰 오빠와 시아버님의 평온한 마지막 얼굴에서 다시 기억이 살아났습니다.

 

나는 혼자 여든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한 살배기 동주와 다섯 살 동화와, 옛날 옛적에 돌아가신 할머니와 정재면 목사님과, 내 동무들과, 내 부모님, 나를 사랑하신 언니 오빠들, 그리고 내가 다닌 다섯 초등학교와 동네 골목길, 피난길을 누빈 모든 이웃들과 함께 나이를 먹은 겁니다. 중고등 학교 여섯 해, 대학 여섯 해, 대학원, 거기서 만난 남편과, 유학 시절, 그리고 그때 나에게 온 두 아들. 그리고 며느리와 손녀 아샤, 요즘 병실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시동생, 모두 나를 여든 살로 만듭니다. 여기 나와 함께 하는 아우 니들도 내 나이를 풍성하게 보탭니다. 흐뭇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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