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제선님에게 그의 일터인 중학교에서 학생으로 지나는 것을 힘들어하는 학생들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각각 아이들마다 다른 배경에서 다르게 자랐고, 다른 특징을 가지고 태어나 컸을 것이니 뭐라 일반화해 말할 수 없어서, 딱히 도움 되지 못해 답답합니다. 일학년 학생들부터 벌써 공부시간에 공부를 포기하고 엎드려 자는 경우가 꽤 많은가 봅니다. 초등학생들도 그런다니 더욱 한심합니다. 그뿐 아니라 아예 학교에 나오지 않으려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여러 대학을 다니며 시간강사 하는 분들의 경험담을 듣다 보면 대학생들도 수업시간에 엎뎌 자는 경우가 있답니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차츰 그렇게 자는 것을 그대로 놔두게 된답니다. 몇 안 되는 공부하는 학생들과 수업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까지 합니다. 잠자고 있으면 조용하긴 하니까요.
이 아이들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를 때까지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허송세월하며 삶을 흘려보냅니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던 사춘기가 길어진 것을 실감합니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라 중학교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라도 출석 일수를 채워 졸업시키려 합니다. 졸업시키는 것만으로 학부모와 학교가 목적을 이룬 것은 아니겠지요. 그 기간을 이렇게 허술하게, 소중한 시간을 소중한 줄 모르고 흘려보낸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들 앞날의 삶을 얼마나 허술하게 보낼 것인가를 심히 걱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학생시절을 보내고 나중에 그 아이들도 부모가 된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자기 아이들을 어떻게 기를 것이고, 우리 사회를 어떻게 책임질까요?
각 발달단계에서 그때 자신에게 걸맞는 과업을 알고, 적합하게 경험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사춘기에는 자기다움을 알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가슴 부풀게 포부삼아 활발하게 익히며 살 때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학교생활입니다.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무슨 이유에서라도 포기하고 싶어지는 것은 심각한 정체감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때때로 어른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핀잔을 주고, 기를 꺾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행동한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으니 그 동기를 알려고 진정으로 궁금해해야 합니다. 건성으로 하는 건 소용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불신을 키웁니다. 이해하려 하고 알아주는 어른들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부모를 통해 우리 사회문화 안에서 아이들이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건강하지 않고 완전하지 않은 것을 잘 압니다. 하나님 나라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부모가 그 사회에 대한 건강한 자세를 가지는 것을 아이들이 보며 알게 되면 부모를 신뢰하게 됩니다. 부모가 시민으로 사회문화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참여의 모습을 보이고, 아이들과 함께하며 소통하며 살면 아이들도 시민 됨의 정체감을 건실하게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복잡한 사회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접하면서 어른과 소통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미숙한 자기 생각대로만 판단하고 해결해보려 합니다. 모두 포기하는 것은 가장 슬프면서도 가장 쉬운 길입니다. 눈을 돌려 온갖 중독의 길로 빠지는 것도 쉬운 방식입니다. 고민해봐야 자기 틀에서 별 도리 없으니 그냥 손을 놓고 당장의 편리함과 즐거움에 빠지기 쉽습니다. 골치 아프게 공부하지 않고 게임하고 있으면 부모의 걱정과 짜증 가득한 얼굴도 잠시지만 눈녹듯 사라집니다. 화면은 빠른 속도로 반응하기를 재촉합니다. 담배 연기와 함께 골치 아픈 숙제는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알아주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잔소리만 하는 부모를 피해 집을 나섭니다. 바깥에서 웅크리고 적당히 나쁜 짓 하며 걸리지 않고 사는 스릴도 있습니다. 친구 집을 전전하면 그 집 식구들 구미에 맞추며, 영구히 정착하지 않아도 되는 무책임의 맛도 알아가며 익힙니다.
조금씩 한 발자국씩 더 깊어지고 더 멀어집니다. 그러다 뒤돌아보면 너무 멀리 온 것 같아 돌아설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결국 자기답게 충실히 아무 것도 놓치지 않고 사는 기회를 버립니다. 자기만의 삶의 권리와 책임을 모두 흩으려 날려버립니다. 그런데 그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서는 든든한 사랑의 사람이 그 아이들에게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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