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만큼 늙게 되면 건강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특히 치매에 걸릴까 걱정입니다. 치매에 걸릴 조건이 여러 가지 있다는데 심장순환의 문제가 가장 크다지만 잠자는 것이 그 가운데 한 중요한 요인이랍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잠의 문제가 세계 어떤 나라들 가운데 제일 심각한 편에 속한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밤늦게 까지 일하는 무리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새벽 아주 이른 시간에 벌써 찻길이 메입니다. 저녁 6시만 되면 조용한 나라들에서 살아봤는데 그들과 달리 우리의 거리는 밤새 북적거리고 있습니다. 여름이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미도 쉬지 못합니다. 외국에서 온 친구의 딸이 여름학교를 서울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우리네 매미들이 밤을 도아 우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매미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사춘기 아이들의 잠 부족입니다.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이 아주 힘들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만, 우리 아이들, 특히 고3이 된 아이들, 충분히 자야 할 나이에 잠을 재우질 않습니다. 부모와 선생들이 고문관이 된 셈입니다. 이 글에서는 치매를 걱정해서 잠의 문제를 거론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한참 잠이 많을 아이들이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그 이유를 우리는 궁금해 합니다. “아, 그것도 모르시나요?” 공부하느라고 그렇다고 하겠지요. 한 시간이라도 더 공부해야 그만큼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합니다. 이제 와서는 우리 때와 달리 대학에 꼭 가야 하는가를 묻지도 않습니다. 또 대학도 서열을 매깁니다. 그리고 그 서열에 따라 평생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름합니다.
삶을 가름하는데도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낸 온갖 자(척도)가 있습니다. 어떤 사명감을 가졌는가는 상관없어 관심도 없고 묻지도 않습니다. 연봉이 얼마인지, 얼마나 알아주는 일인지가 중요한 척도입니다. 결혼중개소에서 문과 계열 대학원생은 목록에도 오르지 못한답니다. 웬만한 지방 대학은 입사원서 목록에 오르지도 못합니다. “몇 시간 자는가?”에서 “성적 등급이 뭔가?” “한 문제 더 풀었는가?” 따져 묻게 됩니다. 들어간 학교가 “어느 지역 어느 급의 대학인가?” “어떤 전공인가?”를 갈라서 봅니다. 그러고 나서 다음 단계는 취직한 곳이 “어느 규모 기업인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에 따라 연봉의 크기를 또 눈독 드립니다.
그러니 아주 어린아이들부터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지 친구 고르기에 척도가 됩니다. 부모의 직업과 지위만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재산규모가 어린 손주들의 배경이 됩니다. 외국에서는 돈 많은 집 아이들이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다”라는 표현이 있지만 우리는 ‘금수저’로 격을 한껏 더 벌려놓습니다. 타고난 외모의 특징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성형하고 피부를 다듬고 몸을 주리고 키를 늘입니다. 화장품으로 눈매를 고쳐 딴 사람으로 보이게 합니다. 문화를 다루는 주무부서 장관이 화장하지 못하는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몰라보게 달리 보였습니다.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서 남들 앞에서 화장 시연하는 것을 허리를 뻗어 유심히 구경하고, “대통령님께서 피부가 제일 좋다”는 말을 듣고 수줍어하는 품을 보이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외국 여성 지도자들의 주름진 자연의 얼굴이 부럽다 느끼게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되어서 머리 염색을 부지런히 합니다.
공부, 학벌, 돈벌이, 권력, 외모 이런 것이 사람답게 사는 우리의 본 모습을 지워 잊어버리게 합니다. 이제 우리가 아이들을 자기 나름으로 잠잘 수 있게 하고, 자기 속도로 자라고, 자기 포부대로 성취하며, 마음껏 눈치 보지 않고 기쁘게 살 수 있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참회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조 성격을 품고 아이들에게도 인조 성격을 합성하고 있다는 것을 자백해야 합니다. 저마다 사랑스럽게 창조되어서 세상에 보내졌는데 무슨 권한으로 우리가 가진 척도대로 아이들을 빚어내는 것인지 뉘우쳐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자연의 아이들로 저마다 아름답게 살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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