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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 서문
나는 아픔에 유난히 마음이 간다. 고3 여름방학, 어느 주일 예배 드리다가 "의사 없는 촌에 가서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지"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의과 대학에 가서 의예과를 거쳐 본과에 갔다. 걱정하던 해부학은 그런대로 문제 없이 해낼 수 있었다. 생리학과 생화학 시간에 피를 뽑아 실험해야 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서로 주사바늘을 찔러 피를 뽑아야하는데 한해 내내 한번도 반 친구의 팔에 주사바늘을 찌를 수 없었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본과 2학년이 되었다. 내가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이 길이 내 길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몸의 아픔이 아니라 마음의 아픔을 다루는 영역으로 옮겨 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몸의 건강' 영역을 떠나 '마음 건강' 영역으로 삶의 길을 바꾸게 되었고, 여든 살을 넘기면서 이제까지 쉼 없이 줄곳 이 길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나는 혼자 일하지 않고 이웃과 늘 함께 하려 한다. 의예과 우리 학년은 여학생이 아홉 사람이었다. 같이 뭐든 하는 짓거리를 만들곤했다. 보기를 들어 함께 글을 써서 한 부짜리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남편 안식년에 간 옥스포드에서는 한 해지만 유학생 부인들이 모여 이야기 나누는 모임도 만들었다. 통상의 대학 동창회가 아니라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함께 자라고, 이 세상에 도움이 되자"는 모임도 만들었다. 각자 전공을 살려 개인 교습도 하고, 학술 모임도 하고, 여러 분야에서 마음을 키울 모임을 만들었다. 학위 공부하러 뒤늦게 스콧트랜드에 가서도 여학생들, 학생 부인들과 모여 삶의 지혜를 서로 보태는 모임을 만들었다. 내가 하는 이런 행동을 눈여겨 본 한 선배가 알트루사를 만들 것을 제안하셔서 <마음이 건강한 여성들이 만드는 착한 세상>을 목표 삼아 정신건강 사회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모람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북아현동에서 소박하게 상담소 문을 열었을 때 신문 기사를 보고 찾아 온 첫 내담자 앵순님을 잊지 못한다. 그 뒤로 수 많은 아우님들을 여기서 만났고, 그 때부터 나의 동지가된 모람들과 함께 이 귀한 삶을 이루어가고 있다. 상담 공부방, 계간지 <니>, 재미있는 학교, 아이들과 잘 살자는 모임, 여성의 눈으로 성경 읽기, 모람들의 발표, 심리학 공부, 어머니 연구 모임, 난민과 살기 모임, 핵없는 세상, 큰 언니 운동, 출판사 니, 월간 소식지들 하는 일이 많다. 모두 마음 건강을 위한 사회운동을 한다.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 한다. 세상의 교육학, 학습 심리, 목회 상담, 상담 심리를 공부하고, 우울증을 다루어 쉰 살 넘어 심리학 학위를 받았지만, 나의 사람 이해는 예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기 중심이나, 세상의 틀에 멈추어서는 참으로 마음 건강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절절히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지으시고 극진히 사랑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참 마음의 건강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똑 같은 사람이 없기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알아주고, 공감하고, 아끼고, 믿어주며 같이 살기가 어렵다.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면 자기와 다른 사람을 제대로 알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도 홀로 살 수 없기에 우리는 서로를 부추기고, 힘을 북돋으며, 협력해서 같이 살려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우리 모두 평생을 두고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며 이해하고 함께 살려면 사람의 비좁은 욕심을 벗어나 사람의 부족한 차원을 넘어서는 공통의 높은 가치 안에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든 어느 누구나 내가 사랑해야 할 나의 이웃이다. 그런 뜻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각기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어린 아이 때부터 무덤에 이르기 까지 서로를 진정으로 마주 대할 때 바뀜과 자람과 영글어 감을 깨우치게 해준다.
몸의 건강은 비교적 알기 쉬운데, 마음의 건강은 잘 보이지 않아 눈을 부릅뜨고 끊임 없이 애써야 깨닫게 된다. 잘 먹이고, 입히고, 깨끗이 하고, 잘 재우면 아기들이 건강하게 잘 자란다고 믿는다. 그러나 몸과 달리 마음이 잘 자라게 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부모 노릇 하기도 어른 구실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요즘들어 젊은이들이 아이 낳기를 꺼리는 것은 단순히 경제 요인만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사교육비가 많이 든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사람 구실을 훌륭하게 해내게 아이를 기를 자신이 없어서 피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부모에게 경제력이 있다고 해도 마냥 귀엽다고 해달라는 것 다 해준다고 해서 될 것이 아님도 안다. 우리 자신이 자라고 살아온 발자취를 되돌아 보아도 스스로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왔다는 자신이 없다. 인간 관계도 힘들고, 욕구 불만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 저것에 마음이 빼앗기고 의존하는 '중독증세'도 숨길 수 없다. 몸이 건강하다고 해서 마음이 자동으로 건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이 있는 사람은 알게 된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혼자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자기 배 아파 낳은 아이를 사랑으로 잘 기르기도 만만치 않다. 누구보다 사랑으로 맺은 부부도 서로 알아주고 이해받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절친이라도 서로 딴 곳을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뜻을 같이 했다고 여기던 동지들도 서로 이해 못하고 패를 가른다. 나라 사이의 갈등과 싸움에 삭막해진다. 힘 없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 이런 상태의 사람들을 두고 마음이 건강하다 할 수 있을까? 그런데 혼자 명상하여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서로 얼굴을 대하고, 마음을 모아, 사랑과 믿음으로 알아주고, 공감하고, 격려하는 관계에서 풀어갈 길을 찾아야 겠다. 그래서 우리들이 서로 외면하지 않고, 모이기를 힘쓰며, 서로 표현된 표정, 말, 행동을 무심히 놓치지 않고 기억하려 한다.
이 글은 그런 모임의 잠정의 결과이다. 6.25 전쟁 때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즐겨 읽던 <새 벗>이라는 잡지의 자매지인 <새 가정>에서 이 글을 실어준 편집장 이 인미 선생이 또 이제 책으로 묶어내는데 애써주고 있어 각별히 고맙게 생각한다. 그리고 부족한 글이지만 읽는 분들이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쓴사람, 만든 사람, 읽는 사람이 함께 '마음 건강'의 공동 작업자가 될 것을 감히 제안한다.
ㅁㅇ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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