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2022.9.(251호)
<여성의 눈으로 건강하게 성서 읽기>
7월 13일
발화와 대화를 통한 변화
김지은
누가복음 16장을 읽었다. 한 모람은 10절에서 예수님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스러운 자는 큰 것에도 충성스럽다고 하셨는데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말씀이라고 했다. 일과 자리가 주어지면 충성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 경우 자신이 소홀해도 불편하고, 충성하지 않는 타인도 불편하니 비판하게 된다고 했다. 다른 이는 충성이라는 의미가 꾸역꾸역 열심히 어떤 일이든 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열심히 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또 다른 이는 약삭빠른 청지기는 내 기준으로 안 좋아 보이는데 예수님이 칭찬하시니 몹시 헷갈린다고 했다. 본문에서 불의한(shrewd) 청지기를 예수님이 칭찬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다.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8절 상).” 그 칭찬이 비아냥으로 들린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결국에는 하나님과 돈, 빛의 아들들과 이 세대의 아들들의 타협하지 않는 선택의 문제가 된다는 입장이 었다.
그러자 다른 모람이 가톨릭 신부님이 쓴 강해서의 한 부분을 들려주었다. 재물도 하나님께 충성되게 사용하는 수단일 수 있으니 부도덕한 집사에 대한 논의에서 빚을 탕감받은 자의 관점으로 이동해 생각해보기를 권했다. 다른 모람은 일제 강점기의 마름처럼 살지 않고 불의한 청지기로 사는 것이 그래도 이웃사랑에 더 가깝다고 했다. 그리고 청지기가 주인의 말을 깨닫고 제대로 행했다는 의견이 나왔다. 청지기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마음으로 지혜롭게 행동했다는 의미였다. 보충하여 청지기가 사람들에게 한 행동동기를 주인이 알아주고 믿었다고도 했다. 예수님은 잘 산다는 의미를 베풂으로써 ‘잘 산다’는 개념으로 바꾸셨다고 했다. 헷갈린다 했던 모람은 주인이 청지기에게 셈하라 하고 청지기는 과도한 이자를 받지 않고, 주인은 그 재산을 돌려받고, 빚진 자는 빚진 만큼만 갚는 식으로 제대로 되어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재물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며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준비가 되었는지 자문했다. 각자 자신이 본문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발언했는데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각자의 입장이 선명하게 이해되었고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이웃과 나눔으로 바뀌는 것이 충성스럽게 사는 방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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