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어른 되기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1강
프로젝트

나는 스물일곱에 결혼했습니다. 그때는 ‘노처녀’ (old miss)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결혼하는 나이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서른 살이 훌쩍 넘어도 노처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작은 아들은 사십대 중반인데도 장가갈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열일곱 열여섯에 결혼하셨는데 말입니다. 에릭슨이 말하는 ‘어른의 시기’가 결혼해 아이 낳아 기르는 부모가 되는 것을 기점으로 삼는 것인데, ‘이제’ ‘여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살이에 맞지 않을지 모릅니다. 내 둘째 아들 같아서는 영영 어른이 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기준으로 어른의 때를 자리매김해야 할지, 생각을 달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혼해서 자기가 배 아파 낳은 아이에게만 부모구실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아이에게도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누가 내 어머니요 내 형제냐?” 하신 말씀에 우리의 가족관계를 달리 보아야 함을 일깨워주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얼마 전 십대 소녀 두 명이 초등학생을 죽였습니다.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죽은 아이가 기막힌 것, “그 아이 부모도 아이와 같이 죽었다”고 하는 검사의 목멘 말을 우리는 무슨 말인지 잘 압니다. 죽은 아이가 자란 마을 사람들이 법정에 함께 와서 그 아이 부모와 한 마음으로 신음하고, 한탄하고, 눈물을 쏟고, 분노하였습니다. 부모 되어 공감하는 마음, 어른의 마음이라 보입니다. 보통 우리는 안타깝게 죽은 아이 부모의 슬픈 마음 비슷하게 가지기는 쉽습니다. 검사가 종신형을 구형했을 때 박수소리가 방청석에서 나왔답니다. 그런데 살해한 아이들에게도 부모가 있습니다. 어른 우리는 그 부모의 마음도 비슷하게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내(우리)아이가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절절하게 가슴 아파해야 합니다.


청년기의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즐기는 때였다면 어른이 되어서는 사랑으로 몸을 섞을 짝을 만나 함께할 삶을 바라 계획하는 단계를 밟게 됩니다. 삶의 모습인 성격과 온갖 힘을 합해서 두 사람 공동의 후세를 맞아 보살피려 하는 ‘바람’(wish)을 갖습니다. “우리 두 사람 공동의 아이를 가지고 기르려는 뚜렷한 ‘바람’을 가진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들 하는 나이에, 남들 하는 결혼을 하고, 남들같이 살다 보니, 아이가 생겼다”는 자세와 달라야 할 것을 요구합니다. 아이 낳아보니 정말 이렇게 “예쁘구나!” 느낍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스러운 아이를 잃었을 때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아이를 기르면서 언제나 귀엽고, 건강하고, 공부 잘 하고, 성격이 좋아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어 자랑스럽기만 할 수 없습니다. 말썽도 부리고, 병이 들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내 아이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사고도 나고 죽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성숙한 책임감을 지닌 확실한 ‘바람’을 가지고 출발한 부모는 재판정에서 박수를 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별 생각 없이 남 따라 부모가 되어도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은 자연스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험한 입장에 처한 자녀도 보살펴야 하는 부모 역할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20년’ ‘종신’ 형 구형에 박수 칠 수 없을 겁니다. 열여덟 나이에 20년 감옥살이가 어떤 것인지, 평생을 옥살이해야 하는 딸이 우리의 아이라고 생각하면 박수할 수가 없겠지요.

아이가 태어나 첫 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알지요. 자신감에 터해서 자기 얼굴을 자기답게 만드는 책임을 지게 하지요. 아장아장 걷게 될 때 독자성을 키우며 다른 사람의 독자성도 알게 되지요. 그런데 성장 시기에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그냥 남 따라하는” 사람으로, 별 다른 생각 없이, 자기 밖에 모르는 원시적인 사람으로 자라게 되는 겁니다. 물론 놀이시기, 학령기, 사춘기, 청년기, 그때마다 부모와 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았어야 하지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세대만 잘 거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낳아 제대로 길러야 하는 ‘생성의 덕목’ (Generativity)의 때입니다. 딱히 번역할 말이 없어서 ‘생성’이라 했지만 여기에는 공통의 유전 (gene), 사랑의 성 (genitality), 그리고 세대 (generation)를 겹치는 것이 두루 다 섞인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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