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딸과 아들을 보는 눈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2강
프로젝트

누구나 세상에 태어날 때 여자나 남자 하나로 정해서 나옵니다. 돌연변이로 두 성(性)의 몸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아주 드물게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들 아니면 딸로 태어나 평생 그 몸으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바꿀 수 없는 몸의 형태와 기능은 남녀가 다른 것을 우리는 성별 (sex)합니다. 며칠 전 예지가 사촌 동생을 보았습니다. 이모가 지난 토요일 남자 아이를 순산했습니다. 우리 모두 축하합시다. 지영님이 주일에 조카를 처음 보려고 병원에 갔다 왔습니다. 다녀와서 첫 마다가 “너무 예뻐요!”입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너무 예뻐요!”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남자아이를 “예쁘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여자 아이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유리창 밖에서 보면서 “그놈 씩씩하게 생겼다” “아주 차분하게 생겼다”고 남자와 여자를 달리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남자 아이에게는 파란색 옷을 입히고 여자 아이는 분홍색 옷을 입힙니다. 자라면서도 남자 아이는 어른들이 거칠게 다루고 여자 아이는 부드럽게 대합니다. 동주가 동연을 빼어닮았어도 동주를 본 삼촌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답니다. 동연이를 보고도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남자 아이가 분홍 옷을 입고 있으면 “딸이냐?” 묻습니다. 가난한 유학생의 아이로 태어난 내 둘째가 아기 때 듣던 말입니다. 얼굴이 동그랗게 귀엽고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더 여자 같아 보이긴 했었지만.. 이렇게 성별을 습속문화 때문에 구분하는 것을 사회 문화로 생긴 성차 (gender)라고 합니다.


아들을 기르든 딸을 기르든 몸의 성별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가 속한 사회 문화로 생긴 성차 개념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남자가 할 수 있는 것과 여자가 할 수 있는 것, 남자가 해야 하는 것과 여자가 해야 하는 것을 굳게 갈라놓은 고정개념 (stereotype)에 얼마나 사로잡혀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입니다. 남자가 흔히 공격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다면 요즘 청소녀들 사이에 일어나는 폭력문제는 왜 일어날까요? 남자 아이는 부엌에 들어오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어떻게 많은 요리전문가들이 남자들일까요? 여자도 사관학교에 가고 축구 심판이 됩니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바깥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얼마나 경직되게 구분하고 그렇게 정한 대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 평생 아이들 삶에 있어서 선택의 폭을 주름잡게 합니다. 아이들에게 역할 모델이 되는 부모가 서로 얼마나 알아주고 존중하며 협력하고 살고 있는지 하는 것에서 아이들은 아주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바깥 활동하는 아버지가 집에 와서도 어머니와 같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관계 맺으며 살고 있다면 아이들은 바깥 활동만 하는 아버지와 가정을 돌보는 어머니라는 경직된 역할로 두 사람-두 성별 역할을 한정하지 않습니다. 바깥 활동하는 어머니라도 어머니의 역할을 겸해서 하는 것이고 바깥 활동하는 아버지라고 해서 아이들의 아버지로의 역할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남자 여자 모두 바깥 활동, 그것도 돈벌이하는 영역에서 성취하는 것만을 위해 부추김받으며 자라온 것이 문제입니다. 전 국민이 다 같이 한 줄에 서서 똑같은 것을 목표로 달리기 하는 어마어마한 광경을 상상해보십시다. 거의 모든 사람이 경쟁에서 패배자가 됩니다. 곁에 선 사람이 어지러워 넘어져도 돌볼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자기 아이도 갑상선의 문제가 생겨 땀흘리며 힘이 없어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생각만 하고 짜증내지 않겠습니까? 결국 그 아이를 돌봐야 할 책임이 부모인 자기에게 돌아올 것을 아니까요.


우리나라 여성학이 남자가 할 수 있는 건 여자가 다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사람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기에 밥벌이만 하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기 낳고 젖먹이는 것은 남자가 못 하지만 관계 맺고 사는 사랑의 보살핌을 여성들조차 저버리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보살핌의 삶을 남성들에게 설득하고 전하여 그 영역도 같이 할 것을 말하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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