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어른인가?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8강
프로젝트

언제부터인가 월요일과 수요일에만 상담하고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상담한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 젊지 않다는 말이지요. 예나 이제나 오전 오후로 한사람씩을 만납니다. 때로는 두 사람이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아주 대조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어느 날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 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하는 경우라는 점에서는 같은 소망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완전히 자기 마음먹은 대로 살고 싶어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바깥 환경에서 기대한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합니다. 또 거기에다 각자 가지고 있는 그 생각을 바꾸고 조정할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고집쟁이들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에게 폭군 노릇을 합니다. 엄마가 생각해서 좋다고 여기는 방식대로, 엄마의 기획대로 아이들이 정확하게 따라해야 한다고 합니다. 남편도 자기 기준에 맞지 않게 딴 짓하거나 곁눈질하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두 엄마의 판단이 자기에게서 나왔거나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할 거라는 판단에서 나왔거나 모두 자기 아이들의 특성과는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갈등이 일어나고, 아이들은 엄마에게 항의를 합니다. 아이들의 항의는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소리 지르거나 도망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소리소리 지르며 울고 발광을 한다고 엄마는 표현합니다. 바깥에서 아이가 문제를 만들면 엄마는 무서운 표정으로 “집에 가서 보자!” 합니다. 협박하는 겁니다. 아이는 집에 가까이 갈수록 엄마의 위협의 순간이 가까워옴을 느낍니다. 불안해지고 잘못했다고 빕니다.

 

엄마의 마음도 아픕니다. 아름다운 동화에 나오는 ‘엄마와 아이 관계’ 같은 좋은 관계를 맺고 살고 싶은데 아귀다툼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육아서도 읽고, 심리학책도 보고, 강연에도 열심히 참가합니다. 왜 안 될까 답답합니다. 아이들이 빨리 자라 자기 품을 떠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이 중요하다는 말은 들어 알고 있기에, 아이들의 평생에 씻을 수 없는 자국을 남겼을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다른 엄마들은 다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선뜻 물어보기도 자존심 상합니다. 혼자 벙어리 냉가슴으로 타들어갑니다.

 

그러다가 상담실을 찾습니다. 문제를 풀고 살아야 하겠다는 필요를 아는 엄마들이 찾아옵니다. “그냥 그런 대로 한 세상 살리라”고 포기하는 엄마들보다 현명하고 성의 있는 사람이라 칭찬합니다. 그런데 이 엄마들의 문제는 아이들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생각하는 대로 해야 하는 거니까요. 아이들의 마음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왜 자기 마음대로 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왜 자기 마음과 아이들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살게 되었을까요?

 

예외 없이 부모님이 바쁘셨거나 편찮으셨다고 합니다. 부모님과 서로 알고 지내지 못한 겁니다. 젖먹이고 기저귀 갈고 재워주시기야 했겠지요. 그러나 아이마다 다른 존재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아이를 길러낸 것입니다. 화초도 알아줘야 잘 자란다지요? 애완동물도 여러 마리 기르면 서로 다른 특징을 봐줘야 다 제대로 자랍니다. 하물며 아이들이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엄마와도 다르다는 걸 알아준다면, 아이도 엄마가 자기와는 다른 존재라는 걸 알고, 사랑하며 산다면 어떨까요? 서로 다른 점을 흠잡지 않고 사랑한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아이 때부터 어른들에게 자기의 다른 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표현하겠지요. 그렇게 자라서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과 다른 자기 뜻을 스스로 존중하여 바깥의 영향에 온통 매몰되지 않을 겁니다. 다른 사람의 다른 점을 알면 자기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며 고집을 부리지 않겠지요. 엄마와 아이가 억지를 부리지 않고, 아귀다툼하지 않고 서로 듣고, 표현하고, 그래서 조절하고, 협력하며 살 수 있겠지요.

 

아이가 한 명이라 힘들다 하거나, 세 명이라고 더 힘들다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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