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자신을 어떻게 여기나?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6강
프로젝트

어제 오전 오후 내가 좋아하는 모람들을 만나 상담하고 저녁에 호수가로 박선생과 산책 나갔습니다. 좋은 날씨라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들으려 하지 않아도 크게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옵니다. 댓 살 된 아이와 엄마가 우리 앞을 지나쳤습니다. 아이는 한쪽 발로 차면서 굴려 달리는 기구를 타고 우리 가까이 급히 지나쳤습니다. 약간 아찔한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뒤에 오던 아이 엄마가 우리를 보고 아이에게 주의를 주어야 할까 망설이는 듯 보였습니다. 그 엄마는 문제가 생기지 않아 다행이라 여기는 듯하더니 큰 소리로 이미 멀리 간 아이에게 “아무개야, 와 잘 탄다!” 외칩니다.

 

다른 상담소에서와 달리 우리는 상담모임이나 심리학교실에서 서로 좋은 이웃으로 거울이 되려 합니다. 누구의 이야기나 잘 듣고 공감하여 이해하고 제대로 알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서로 듣고 느끼게 된 것, 알게 된 것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서로 자신을 더 잘 보게 됩니다. 그런 감격스런 때를 가끔 가질 수 있어 우리 상담소의 좋은 점이라 여깁니다. 그럴 때마다 누구보다 내가 아주 감격하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우리 니(여성)들이 이제부터 다른 생각으로 정말 다르게 살게 되겠구나!” 미리 감사하며 기대에 부풉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를 거듭해도 완강하게 바뀌지 않는 모람을 보면서 “나만 좋아했구나!” 허탈해집니다. 때로는 바뀜을 기대했던 모람이 아예 우리를 떠나버리기도 하고 몇 해씩 집에 콕 박혀 발길을 끊기도 합니다.

 

서로 해준 말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즘 한문순의 명언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 번을 들어야 알까?”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아마도 “사람은 다 다르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제대로 듣지 못할까요? 멀쩡한 귀가 있고 청력이 떨어진 노인네가 아닌데 말입니다. 게다가 절절한 표정까지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서로 부등켜 안아주기도 하고 같이 울기도 합니다. 연기를 잘하는 사람도 따라하지 못할 직접 경험인데도 왜 제대로 듣고 전달받지 못할까요? 듣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장애가 있나 봅니다.

 

여기에 기초신뢰감의 문제로 눈이 떠지고 해답을 받습니다. 우리가 자라온 방해문화가 있습니다. 아무도(이웃을) 믿지 말라고 하는 태도가 깔려있습니다. 엄마에게 온통 의존해 살아온 엄마 몸에서 나와, 엄마의 가슴에 매달려 생명을 유지하며 아이는 자랍니다. 완전한 ‘서로 신뢰관계’입니다. 그런데 몸의 자람만이 아니라 마음을 키우는 신뢰가 같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예쁜 짓 할 때만 사랑하는 엄마 (이웃)이어서는 완전한 신뢰가 자랄 수 없습니다. 어른 (이웃)의 기대에 어긋나면 사랑을 거두어들인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긴장하고 살게 됩니다. “늘 웃는 아이”라 좋다는 어른은 아이에게 웃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습득하게 합니다.

 

“뭐든 잘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칭찬하고 좋아합니다. 대회에 나가 경쟁하게 하고 상을 받아오기를 부추깁니다. 아이가 특목고에 가기를 부모는 바랍니다. 친구(이웃)과 같이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친구(이웃)과 경쟁하게 만듭니다. 자기가 아는 것을 친구(이웃)과 함께 깨닫는 관계를 다 잃게 합니다. 정부가 일반 고교로 모두 바꾸려는 목적이 거기 있습니다. 그러나 특수 학교에 아이를 보낸 부모는 한사코 반대합니다. 자기 아이만 “(공부) 잘 하는 아이”라서 “좋은 대학에 잘 가고” 또 나가 “더 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글머리 산책 장면에 등장한 엄마도 “뭐가 됐든 잘 하는 것”을 아이 자세로 심어주려는 것입니다. 잘 못하면 큰 일 나듯 생각하게 아이를 다져놓습니다.

 

우리 모람으로 돌아와 보면 우리 모람들도 “다 잘 하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믿지 못할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자신을 고치고 자라야 한다는 명제가 부담스럽게 됩니다. “내가 잘 못했다는 말인가?”에 이르면 억울하고 고집부리는 상태로 몰입합니다. 아니면 “아무리 당신들이 그래도 나는 아니야!”하는 뻣대는 마음도 품게 됩니다. 그러니 나 혼자 감격하고 감사하다가 말게 됩니다. 그래도 아직은 만 번은 되지 않았다고 계산을 줄이면서 또 다시 처음인 양 성의를 다해 말해봅니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하겠지요.

 

*니: '여성'을 가리키는 말들이 모두 니로 끝나기에 알트루사 문은희 소장은 글에서 여성들을 대체로 '니'로 호칭한다. 

**모람: 모인 사람의 줄임말로, 회원의 고유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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