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청년들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1강
프로젝트

드디어 사춘기를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말끔하고 시원히 사춘기를 지난 게 못되나 싶습니다. 허기야 몸의 나이로 봐서는 청년이 되긴 했습니다. 엊그제 SBS 스페셜에서 ‘대2병’ (대학 2학년생 병)에 대한 특별보도가 있었습니다. 우리 모임에서 늘 심각한 문제라고 이야기 나누었던 이야기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이제 심각하게 의식하고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 외면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일깨우는 호소였습니다. 청취자로도 답답해 보였지만 당사자 대학 2년생들은 그 병이라는 증상에 얼마나 막연하게 느낄까 안쓰러웠습니다.

 

어느 해엔가 수능고사 만점을 받고 대학에 들어간 젊은이가 낭독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대학에 들어가는 준비만 했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젊은이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여러 다른 대학에 다니고 있는 젊은이들도 한 목소리로 같은 말을 합니다. 전공과목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가 선택하지 않고, 취직 될 것을 고려하고, 성적에 맞추어서, 부모와 교사와 의논해서 정했다고들 합니다. 첫 해는 정신없이 어영부영 교양과목을 거치고 나서, 2학년에 이르러 전공이라고 강의실에 들어가 보니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자괴감이 들었다”는 처량한 (유명한) 문장 가운데 ‘대통령’ 대신 ‘대학생’을 넣으면 되는 말을 저마다 하고 있다고 합니다. 초등, 중고등 12년 동안 선생이 말하는 것을 “듣고-쓰고”하는 과정만을 해왔는데 대학에서도 여전히 또 “듣고-쓰고”만을 하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보면서 한탄스런 신음 소리를 냅니다. 대학 다음에 가야 할 학교가 이젠 없으니 “어쩌나?” 싶은 거지요.

 

그렇게 대학을 거쳐 나온 선배들 가운데 이른바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줄줄이 “듣고-쓰고-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착잡해집니다. 그래서 수능 일등한 우리의 이 ‘대학 2년생’은 휴학 하고, 우리 젊은이들 문제를 파헤치는 글을 쓰려 길 떠납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에 사는 또래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보려고 그들을 만납니다.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익혀하는 그들은 각기 자기다운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자기 삶을 결단하고 진행하며 사는 ‘대2생들’로 우리네 ‘대2병’을 앓지 않고 있다는 것을 놀라서 바라봅니다. 고등학교를 마치면서 대학에 가서 뭘 할지 마음 정하지 못하면, 그런대로 우리 마냥 대학에 무턱대고 가질 않습니다. 한 두 해 여행하거나 일하면서 탐색합니다. 고등학교와 대학 ‘사이 해’ (gap year)라 이름 하는 이런 기간을 시간 허비한다며 아깝게 여기지 않습니다. 평생을 망치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라 여깁니다. 우리의 처지를 말해주는 그 젊은이가 얼마나 그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듣기 민망했습니다. 그 젊은이도 보고 있는 나같이 느끼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하는 이런 선택은 대학생이 될 때가 되어서 갑자기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그 느낌과 생각을 표현할 기회를 가지고, 늘 스스로 그렇게 해보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늘 그렇게 하도록 어른들이 기회를 주고, 듣고 존중해주었어야 합니다. 어른들의 말을 “듣고-(머리 속에 받아)쓰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 ‘대학 2년생’이 돌아옵니다. ‘대2병’은 그 때까지 줄창 그렇게만 살아온 탓에 생긴 것입니다. 이른바 일류대학에 간 사람일수록 “듣고-받아쓰기”를 아주 잘 한 젊은이들입니다.

 

그럴수록 세상 보는 눈이 좁고, 널리 볼 관심도 자라지 못합니다. 앞자리에 앉아 선생만 쳐다보며 선생의 소리만 듣고-베껴 써야 하니 곁에 있는 친구들은 있으나 마나 합니다. 그러니 친구들에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청년기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운 관계 (intimacy)를 맺는 때라고 에릭슨이 말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나이가 차면 절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혼자-듣고-받아쓰고” 살기만 해서는 가까운 관계를 맺고 같이 사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고 우울증에 빠지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겁니다. 신혼 시절은 멀리까지 깨소금 냄새가 풍긴다며 재미있게 놀리듯 말하지만 실은 겪어내기 아주 힘든 때임을 숨겨두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 수 없는데 우리는 열심히 혼자 사는 훈련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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