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어려워진 사춘기라는 터널 지나기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3강
프로젝트

지난 주에 민족의 명절 한가위를 맞았습니다. 선물 보따리를 싸들고 애들에게 꼬까 옷 입히고 일찌감치 기차 예매표를 사서 민족 대이동을 합니다. TV 화면에서 보여주기로는 “가족들 만나 맛있는 것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을 기대한다”는 흥분의 말을 띄우면서 분위기를 잡습니다. 그러고 나서 긴 연휴 내내 그렇게 즐거워야 할 장면 대신 우리는 끔찍하고 무서운 사건 사고를 연이어 듣고 보게 됩니다. 형제들 사이에 칼부림은 한 건 두 건이 아닙니다. 모녀가 다투다가 어머니가 약물을 마셨다고도 합니다. 명절 후에 부부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이혼으로 치닫기도 합니다. 

 

이 정도까지 가지 않더라도 부모님 뵈러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스멀스멀 고개 들고 일어납니다. 가깝지도 않은 친척들과도 어쩌다 만나 재미있을 리 없습니다. 늘 먹던 명절음식 새삼 맛있을 리 없습니다. 여자들은 똑 같은 일로 잠시라도 앉아 마음 풀고 이야기 나눌 겨를도 없습니다. 허기야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하고 싶은 상대도 없습니다. “뭐하는 짓인가!” 하는 소리가 집집마다 울려나올 참입니다. 내가 사는 일산도 차츰 풍경이 바뀌고 있습니다. 명절 때면 조용하던 곳이 이제는 노인, 젊은이, 아이가 같이 명절에도 여는 식당에 가족 단위로 모여앉습니다. 호수 공원도 이제 그 이상 조용한 명절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제사도 여행지에서 올린답니다. 선조의 영혼도 여행지로 동행하나 봅니다.

 

이런 명절 변주곡이 순조롭게 연주되면 가족과 명절문화의 변천을 가져오겠지요. 노인 젊은이 아이가 합의해서 여러 악기같이 합해서 아름답고 조화로운 변주곡을 만들어 가면 좋지요. 그런데 오빠와 단 5분만을 같이 할 수 있었던 모람이 있습니다. 아침 점심 나누어 시댁과 친정을 바삐 오간 모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이에 통 흐뭇한 맛과 풍성한 재미가 없었다면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일즈맨의 죽음이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유리 동물원들에서 우리만이 아니라 서양 여느 가족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사춘기는 일찍 시작해서 늦게 까지 뻗어있어 아주 길어지고 있습니다. 자기 짝을 찾고 자기 일을 잡는 일을 하게 되기 전까지 사춘기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요즘 결혼 나이는 자꾸 늦추어집니다. 직장을 가지기가 하늘에 별 따기 같습니다. (좀 지나쳤나요?) 서른이 되어도 부모 품을 떠나지 못하고, 부모 탓하면서 사는 자녀들 때문에 “둘째를 낳지 말 걸!” “셋째를 낳지 말걸!” 하는 집이 늘어갑니다. 대체로 동물들은 자기 어미에게서 빨리 떨어져 나가기에 사춘기가 짧다 못해 아예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해마같이 수놈이 새끼를 낳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사춘기가 길어질수록 생각하고 풀어야 할 요인은 많아지고, 어른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많아집니다. 사춘기 아이도 힘들고 그 아이를 양육하는 어른도 힘들어집니다.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럽고 다루기가 아주 힘들어집니다.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고 잔재주를 부릴 수도 없습니다. 속 빈 칭찬을 건성해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살 수 없습니다. “앞으로 잘 될 거야!” 말한다고 위로가 되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이 자기파악과 현실인식을 누구만큼 다 잘 하고 있으니까요. 자기의 문제를 환경에 돌리거나 다른 사람 탓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삶의 문제의 늪에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자기자신을 제대로 파악하고 스스로 해결하려 하고, 또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해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깥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적절하게 그 도움을 자기 자원으로 동원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이웃에게 자신이 자원이 되어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협력해서 사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바깥 자원에 눈어두운 자폐성향은 문제이고 개인별로 단절된 경쟁체제는 아이들을 불리하게 살도록 만드는 겁니다. “네 앞가림만 해라!”보다는 다른 이웃을 위해 같이 책임지는 삶을 찾고 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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