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적 틀에 갇혀 평생을 살다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9강
프로젝트

자기가 왜 이렇게밖에 살지 못 하는지 궁금해 하는 여성들을 상담실에서 늘 만나고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인데 자신이 원하는 것도 모르겠다고 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어서 답답해합니다. 그 여성들도 좋아하는 물건이야 뭔지 알고 있다고 합니다. 명품 가방일 수도 있고, 자기 입맛에 맞아 입속에 짝 달라붙는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지야 자기가 알겠지요. 유행하는 옷과 구두에 대한 취향이야 선선히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늘 불안하고 걱정입니다. 지금은 남편이 벌이가 좋지만 언제 어찌 될지 모른다고 미리 걱정합니다. 걱정해도 아무 소용없는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걱정하는 마음을 놓아버릴 수 없습니다. 아, 아이들 이야기하면 걱정이 눈앞을 가리고 정말로 막막해집니다. 자기 건강 문제 같은 건 “저리가라!” 입니 다.

그래서 술을 마시기도 합니다. 잠시 근심 걱정을 잊게 합니다. 기분이 “알딸딸해집니다” (실은 글 쓰면서도 나는 이 기분을 모릅니다. 주워들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러나 술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술에서 깨어나면 문제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뭔가 해서 해결해 버릇한 여성들은 문제해결하는 방도를 찾으려 발 벗고 나섭니다. 정신건강을 위한 책을 사 읽거나 강연장을 찾아다닙니다. 육아서를 사들이고, 심리학책에서 답을 찾으려 합니다. 때로는 “아, 이거구나!” 감격해서 무릎을 칩니다. 물론 당장 실천하며 살아보려 합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바뀌지 않고, 그러니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이것도 잘 안 되는 방법임을 알게 됩니다. 정보를 많이 갖는,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열심히 명사들의 강연장을 찾아다니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그것도 들을 때뿐 정작 돌아와 아이들 얼굴을 대하고 보면 ‘도루묵’이 됩니다.

어떤 됨됨이의 사람인가라는 것이 문제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가지치기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 품에 처음 안기는 순간부터 푸근한 기초신뢰감과 든든한 독자성이 건강하게 자라나서 거침없는 놀이시기를 어떻게 보냈는가 하는 것이 어른이 되어 사는 틀과 모양새 그리고 품을 이미 만든 겁니다. 어른이 되어 어찌 사는가 하는 것은 놀이시기에 얼마나 건강하게 잘 놀았는가에 달린 것입니다. 아이의 느낌과 상상의 힘과 품이 거침없이 살아 확장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이 있었기 때문에 삶의 과정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고, 늘 결과를 걱정하는 사람이 됩니다.

평온한 마음으로 삶을 즐기며 구가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열심히 무언가 해내려 애쓰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거창한 일을 해낸 사람이라고 여겨져야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틀을 가지고 살게 되기도 합니다. 더 큰 일을 더 잘 해내야 한다는 긴장으로 다른 사람과 늘 비교하는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강박에 매입니다. 남과 다른 개인으로 달리 사는 맛을 잃은 겁니다. 늘 쉼없이 움직여야 하는 기계같이 살게 됩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기계가 아니므로 쉬기도 해야 하니까 24시간 늘 움직여야 하는 기계를 위해 삼교대 합니다. 그런데 쉬어야 하는 시간에도 쉬지 못하는 사람은 몸은 쉬어도 근심걱정으로 마음이 쉬지 못합니다. 그래서 심인성 질환 (psychosomatic diseases)으로 괴로움을 당합니다. 이유 모를 우울증은 그렇게 생긴 병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제 다른 나라에 정착해 사는 친지를 만났습니다. 손녀가 유치원 다니는데 아직 알파벳도 모르면서 요리하는 것을 재미있게 놀며 익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 식사 준비하는 것을 시시한 일이라 여기지 않고 즐겁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빨리 어른에게 필요한 도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닌지 반성합니다. 유치원에서 이미 우리 말 읽기 쓰기뿐 아니라 영어도 가르치고 어떤 아이들은 한자도 배운다는 말을 듣습니다. 아이로 놀이시기를 거치는 것을 방해하는 겁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른이 아이의 마음을 알아 공유하고 동료가 되는 것입니다. 몸의 크기와 삶의 주기에서 어른과 아이라는 각기 다른 시기에서 사는 탓에 생기는 불평등을 넘어서, 동등한 동료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 소중하게 필요합니다. 아이의 불안을 아이 혼자 지고 애쓰게 한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꺼지지 않는 불안 속에서 삶을 지속하게 하는 문제를 풀 수 없게 할 뿐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