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사회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10강
프로젝트

어제 맛있는 점심 먹으면서 들은 따끈따끈한 ‘동화와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세 살짜리 어린 동화가 물을 엎지르고는 “엄마 내가 물을 엎질러 화났어요?” 한답니다. 엄마가 자신의 어떤 행동을 마땅찮게 여긴다는 것을 알아채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아침에 어린이집에 갈 준비를 부지런히 하지 않는 날도, 엄마의 지시를 듣지 못하고 자기가 하고 있던 짓을 눈치 없이 계속했을 때에도, 자기가 엄마를 화나게 만들었다고 알게 되는 겁니다. 때로는 아이와 상관없이 엄마가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부부 사이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고, 알트루사에서 풀지 못하고 머리에 남아 마음을 무겁게 한 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엄마의 사정을 다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엄마의 화를 흠뻑 뒤집어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의 어떤 행동이 엄마의 화를 불러왔는지 머리를 굴리게 됩니다. 그리고는 엉뚱한 일과 정확하지 않은 상관관계를 맺어봅니다.

그렇게 하면서 자란 사람들이 어른이 다 되어서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헛발 짚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펼치기보다 바깥의 화를 부르지 않기 위해, 이른바 부모의 화를 부르지 않고 부드럽게 맞추어 살려고 하게 됩니다. 책을 좋아해서 늘 책을 읽고는 상상의 날개를 한없이 펼치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국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며 그 상상을 펼치며 즐겁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사회에서 기쁘게 알아주는 법학을 전공하라는 권유에 말려들었습니다. 어려서 책을 많이 사주신 아버지는 아이의 기쁜 삶보다 냉엄한 ‘현실의 이름으로’ 법전에 안착할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살맛을 잃게 하고 우울함에 빠져 헤쳐나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결혼도 잘하고, 아이도 건강하고, 직장도 단단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는 늘 주저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따라야 할 것 같고, 마음이 늘 불편합니다. 바깥의 요구에 응하는 촉각만 예리하게 날이 서있습니다. 바깥에서 잘못 되는 일이 있으면 자기 탓을 합니다. 직장 동료나 남편이나 시댁 식구, 친정부모까지 모두 바깥에서 자기를 향해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해결하기를 기대한다는 부담으로 살고 있습니다. 남편이 화낼 일이라고 짐작되면 자기뿐 아니라 아이도 단속합니다. 아이도 자기의 전철을 따라 밟게 합니다. 불평이나 서운한 것이 쌓여도 표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한 마디 못하고 삽니다. 뒤에서 들리지 않게 구시렁거려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요즘 아버지들은 옛날과 달라서 “여자도 전문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현모양처만으로 성에 차질 않습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독립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독립은 독자성을 살리는 독립이어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현실’의 이름으로 경제의 독립만을 주로 독립이라 여기는 오늘, 우리 사회의 개념으로만 참 독립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겁니다. 자신의 내면이 요구하는 마음의 ‘현실’을 깡그리 무시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태어나서 한 번 사는 귀한 삶인데 죽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기쁘고 환하게 삶을 구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취만으로 충분하다는 잘못된 사회의 요구를 넘어선, 자신의 마음과 남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다운 사랑이 필수조건입니다. ‘일’과 ‘사랑’을 제대로 잘하기 위해 동화는 지금도 열심히 엄마가 자기를 얼마나 허용할 수 있는지 탐색하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직장이 없어 힘들어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마음의 영역이 없이는 더더욱 살아내기 어렵습니다. S대학 출신으로만 진을 친 주변인들 사이에서 Y대 출신이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무리 직장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의 영역이 허술하면 삶을 중단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동화와 함께 자기 자신과 환경(엄마)을 제대로 탐색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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