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조절하기 그리고 협력하기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5강
프로젝트

 

 

지난 주일 은유가 아주 깔깔대며 즐거워했습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에 멈추고 나선 신이 났습니다. 깡충대며 춤을 출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자기 몸을 멈출 수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좋아서 깔깔 웃는 것까지 멈출 수는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어른이 조용히 하라고 해서 억지로 멈춘다면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겠지요. 자존심 상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독자성의 든든한 뒷받침입니다.

아이의 자기 조절 능력이 살아나는 것을 방해하는 어른들의 지나친 간섭은 자기 확신을 앗아가고 떳떳한 자기표현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얼마 전 만난 여성과 상담실에서 이야기 나누다가 새삼 우리 어린 시절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여성은 딸부자 집에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나마 남동생을 본 것이 집안에 경사였기에, 남동생에게 문을 열어준 공로로 조금이나마 딸로의 위치를 격상시켜주었습니다. 그래도 아들이 중요하니 농사일로 바쁜 때에 동생을 봐줘야 해서 언젠가는 학교도 몇 달 쉬어야 했답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학교 종소리를 들으면서 슬펐던 어린 시절에 한마디 항의도 못하는 스스로 억제하는 여성으로 자랐습니다.

이야기가 껑충 뛰어 그 여성이 결혼하게 된 역사에 조명을 비춰봅시다. 좋은 집안끼리 혼인한다고 어른들이 만족스레 정혼하셨습니다. ‘말 잘 듣는’ 총각과 이 처녀가 자기들의 마음은 별로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조절을 포기하고) “자연스럽게(?)” 결혼했답니다. 첫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자기가 조절되어 온 것 같이 자기 아이를 조절하며 길렀습니다. 언젠가 곁에서 지켜보던 아이 동무의 엄마가 “아이가 숨 막히겠다”는 말을 했을 때 처음으로 자기를 돌아보게 되었답니다. 그러고 보니 층층 언니들 밑에서 “순하다”는 말 들으면서, 시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해왔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챘답니다.

언니들을 포함한 어른들이 막내 여동생을 잘 보살피면서 (아이의 조절 능력을 알아주면서) 아이가 스스로 어른들을 위해 호응해줄 기회의 균형을 잡았더라면, 서로 협력하는 우애를 가질 수 있었을 겁니다. 우애를 기르지 않은 채 뒤늦게 자기를 찾으려다 보니, 서로 억울해하고, 서로 보살피지 않게 되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답니다. 아이들을 잘 보살핀 시댁에서 자란 신랑은 부모님의 사랑을 잘 받아들이면서 무리없이 효도하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런 눈으로 처가를 이해할 수 없듯이, 이 니도 시어머니의 사랑이 쓸데없는 걱정과 간섭으로만 느껴집니다. 사랑인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든든한 독자성을 가지고 평생을 건강하게 살려 하면 혼자만 근육이 발달하고 언어소통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협력이 있어야 하고 어른들에게 협력을 청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주 어려서 부모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어렵게 지내온 젊은 여성을 만났습니다.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니 굽이굽이마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감사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이웃이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녀는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어, 용기있게 살아왔다고 칭찬했습니다.

은유가 어린이 집에서 장난감을 빼앗은 동무들이 있으면 대결해서 싸우지 않고 선생님에게 가서 말하고 도움을 청한답니다.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한 나이임을 자각한 겁니다. 자신의 필요를 알고 서로 돕고 도움 받으면서 사는 것이 삶의 지혜임을 아는 겁니다. 입 꾹 다물고, 참고, 억제하기만 하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무시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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