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6강
프로젝트

남편에 대한 불만을 품은 여성들이 꽤 많습니다. 미워하기도 합니다. 왜 이 남자와 결혼했는지 후회막급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이 결혼생활의 피해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다양합니다. 어떤 여성은 남편이 착하기는 한데 말이 없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여성은 남편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시어머니 편을 든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여성은 다 좋은데 담배를 끊지 못하고 어쩌다 끊어보려면 (금단 현상인지) 생판 딴 사람이 된답니다. 다른 여성은 엉뚱하게도 남편이 친정아버지만큼 사업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눈을 흘기고 형부같이 자상하지 못하다고 투덜댑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주려 남편이 마음 쓰는 것은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고 남편을 두고 풀리지 않은 문제 때문에 아이들에게 짜증내고, 크게 소리 지르고, 매를 들기도 합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안 된다”면서 후회하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하는 짓을 반복한답니다. 육아서를 읽어도, 부모 교육을 받아도 별 효험이 없다고 힘들어 합니다. 나이가 꽉 차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둘이 같이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고 여기는데 그 것만으로 잘 되지 않는 겁니다. 언제 어디서 문제가 비롯되었을까요?

남편은 아내인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깜박 잊고, 자기가 원하는 틀대로 반응하기를 기대하는 데서 생기는 차질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사람을 보는 여성 자신의 눈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의 문제가 아니라니!” 남편이 나쁜 사람이라고 치부해왔는데 기막힐 노릇이 되었습니다. 나쁜 남편이 가해자이고 자기는 피해자라고 여기고 여지껏 살았는데 아니라니 말입니다.

그런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는 눈이 언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태어나자마자 그때부터라고 하면 너무하다 할 겁니까? 허기야 태어나기 전부터라는 말이 더 맞을 것입니다. 부모가 어떤 눈을 가지고 사는 분들인가 하는 것이 출발점이니 말입니다. 그분들의 양쪽 조부모님의 안목이 그분들의 눈을 만드셨으니 역사는 더 깊어집니다.

손자를 기다리시던 한 여성의 할아버지는 손녀가 태어난 것이 마땅치 않으셨습니다. 어린 손녀가 할아버지께 문안인사 드려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인사드리지 않으면 인사하지 않은 것 때문에 불호령이 떨어졌답니다. 거기서 새가슴 지닌 아이는 무얼 배우고, 어떻게 이 세상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익히고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눈치를 살펴, 자기가 처리해야 할 것을, 그 것도 눈에 띄지 않게, 열심히 뒤처리하면서 착하다는 말 들으며 살아야 했겠지요. 이렇게 자란 여성은 자신을 지켜가는 것보다 부모에게 누가 되지 않아야 하고, 남동생에게 피해가 되지 않아야 하고, 시댁에서 친정이 흉잡히지 말아야 하는 온갖 도리를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며 찾아내고 풀어가야 합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장사라도 힘이 부칠 수밖에 없습니다. 잠을 설치는 것은 당연한 순서입니다. 편두통도 물론 필수입니다. 아이는 엄마 앞에서 얼찐거립니다. “빨리빨리” 해주기 바라지만 아이는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소리 지르게 되면 남편은 그 속을 모르고 “왜 아이에게 소리 지르냐?”고 합니다. 신경정신과에 가니 우울증이랍니다. 이런 처지에 약이 힘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보고 다른 사람을 보는 눈이 제대로 달라지기 전에는 묘약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곁에 있고, 귀여운 아이들이 품에 있는 여성들은 눈을 바꿀 기회가 가깝게 있습니다. 불완전하고 건강하지 못한 자신의 눈을 고치려면, 잘못 보고 있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 주장하지 말고, 남편과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것을 같이 보려 하고, 그들이 보고 느낀 것을 같이 느끼려고 해 보는 겁니다. 시력과 함께 청력도 좋아야 하겠지요. 그리고 마음을 열고 굳어진 자기 마음도 유연해져야 합니다. 남편에게서 가해자의 누명을 벗겨줍니다. 자기도 언제까지 피해자 노릇만 하고 있을 수 없지요.

좋은 엄마는 자연스레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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