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사랑의 균형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1강
프로젝트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려했던 여권운동이 실제로 보통 여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별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국제기구의 연구결과가 신문에 간단하게 보도되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OECD 나라들 가운데 남녀 임금격차 크기에서 1등이랍니다. 60년대 여성운동이 서구에서 활발해지고 우리도 덩달아 70년대 후반부터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지요. 문제는 고위층 여성들의 ‘유리천장’을 깨는 구호에 치우쳐서 밑뿌리 여성들의 삶을 외면한 셈이 되었습니다. 꼭대기의 여성들의 진출이 많아지면 모든 여성에게 혜택이 가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때에도 나는 몇몇 여성들이 남성들의 대열에 편입한다고 해서 밑바닥 여성들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홀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위에서나 아래에서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결과가 남녀임금 차이는 조금이지만 줄어드는 반면 여성들 사이의 차이는 더욱 심해진 것입니다. 고위 전문직 여성들은 자기가 잘나서 그렇다고 여길 겁니다.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여성들이 못나서 그렇다고 깔보겠지요. 이 연구에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평범한 여성들을 위한 가정 친화적 직장과 기회제공에 실패한 것입니다. 일하며 사는 여성들의 삶을 모른 것입니다. 불란서의 유명한 한 여류가 큰 재산을 물려받고 유명인 남편과 살면서 아이를 자기 손으로 기르지 않아도 되었다는 고백을 한 것은 그나마 양심이 있다고 봐줄 수 있습니다.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살고 있는 이른바 ‘한 자리 하는’ 고위층 여성이 똑 같은 24시간에 맨 몸으로 온갖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보통 여성의 어려움을 알까요?

특히 아이를 기르는 문제에 이르면 여성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그러니 아이 낳는 것, 결혼하는 것을 피하려 합니다. 지자체에서 정부에서 돈을 주어서 “아이 낳고 싶어지는 나라”를 만든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돈이 문제를 제공하고, 또 돈이 문제해결을 해준다고 믿습니다. (하긴 “돈이 원수”라고도 하지요.) 이런 해결방식의 바탕을 이루는 철학은 돈을 버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마음은 사라지고 흔적도 없습니다.) 보통 임금을 가지고는 아이 기르는 비용을 대기가 빡빡하니 정부에서 주는 양육비를 받아 집에서 아이를 기르는 것이 계산에 맞으면 여성들은 일자리를 미련 없이 버립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는 첫 단계인 청년기에 갖추게 되어야 할 덕목은 어른으로 평생을 보람차게 활동할 일을 찾고 사람들과 마음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사 돈으로 환산하느라 일의 보람도 사랑의 관계도 메말라집니다. 남자 친구가 어떤 이벤트를 화려하게 (돈을 얼마나 들여) 해주었는가 하는 것으로 따스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은 묻고, 싸늘하고 무감각한 돈으로 환전합니다. 한 번 태어나, 한 번 사는 인생이라, 한 순간이라도 보람차게 살며 활동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연봉의 크기에 따라 팔려 다니는 도구 같은 기능인으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너그러운 마음을 찾을 길 없습니다. 서로 주고받는 ‘마음’도 손익을 따집니다. “내가 너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이 자랑스럽지 않습니다. 친정엄마들이 딸을 시집보내면서 “네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널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라” 합니다. 잘 사는 집에 보내야 손해가 아니랍니다. 딸보다 사위가 학력도 더 높아야 한답니다. 성별 임금격차가 점차 사라지는 나라는 아직 사랑하는 마음이 살아 있고, 일의 소명감이 있는 곳입니다. 일하며 사는 마음, 사랑하며 사는 마음의 소중함을 모르면 경제대국의 반열에 이름을 끼어 넣는다 해도 일의 보람도 사랑의 맛도 모르게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참으로 사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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