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되어 산다는 것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3강
프로젝트

알트루사에 와보신 분은 우리가 얼마나 작은 집에서 활동하는지 아십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작은 집을 처음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39계단을 올라 대문을 들어서면 부엌 옆방, 부엌 그리고 안방을 터서 기다랗게 모임방을 만들었습니다. 좁고 긴 테이블을 두 개 놓고 둘러 앉아 모임을 가집니다.

 

지난 수요일이었습니다. 아침 상담을 마치고 들어와 보니 동화가 상 끝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제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먹는 것을 즐기는 한 살도 안된 동화는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에 먼저 즐겁게 먹고 있었습니다. 제가 동화의 맞은편에 앉고 모두들 둘러앉았습니다. 그날엔 점심 식구가 많지 않아 엉성해서였는지 동화와 내 사이가 멀어보였습니다.

 

문득 제가 다니던 글라스고 대학의 미술관에서 본 그림 생각이 났습니다. 서양의 저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고 긴 식탁의 양 끝에 주인 남자와 조금 젊어보이는 그의 부인이 앉아 묵묵히 음식을 먹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림 속의 사람들이 재미없어 보이고 대화가 없었다는 인상은 아마도 그림의 제목 때문에 느낀 것이었나 봅니다. 제목은 ‘정략결혼’(Marriage of Convenience) 이었습니다. 사랑으로 맺은 결혼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조건을 맞추어 편리하게 한 결혼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네 젊은이들이 참으로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그저 살기위해 여러 가지 조건에 맞추어 선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경제 요인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기신 인영님 부모님은 언니들을 대학 마치자 곧 잘사는 집에 보내시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지금은 제일 재미있게 살고 있는 인영님네지만 신랑이 가난하다고 걱정하셨답니다. 생각해보면 결혼할 때 신랑을 잘 모른 체했다고 “콜럼부스가 미 대륙 발견하러 떠난 것보다 더 용감했다” 고 우스갯소리도 합니다.

 

결혼식장에서 요즘 보듯이 신랑 신부 두 사람이 영화 속 주인공이라도 된 듯이 아름답고 다정하게 포즈 취한 사진들을 과시하지만 정말 있는 그대로의 됨됨이만을 보고, 사랑에 빠진 것일까 묻는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그런데 사랑에 빠지는 밀접한 인간관계(intimacy)는 몸으로 사랑하는 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몸으로 사랑해서 아이도 낳고 살기야 하지요. 그러나 마음과 영혼을 다해 사랑하는 것은 사춘기에 자기 정체감의 확립이 우선해야 가능합니다.

상대되는 사람을 안다는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영님이 신랑을 잘 모르고 했다지만 사실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이제 자신을 알아가니까 신랑도 더 잘 알아가고, 마음을 공유하며, 더욱 재미를 함께 누리며 살게 되는 겁니다. 한 젊은이가 하는 기도를 들었습니다. 끝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시작을 본다는 뜻의 기도였습니다. 어떤 경험을 한 모양이라 했더니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자기를 모르는 채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하고 그 사람의 요구에만 응하려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잘 헤어졌다”고 했습니다. 그간에 누굴 좋아한다고 할 때면 “연예인 좋아하듯 하지 말라”고 했었지요. 바로 그 말이었음을 스스로 깨달아 신통했습니다. 앞으로 또 누구를 사랑한다 할지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으로는 한 단계 진전한 셈입니다.

어른 되기 위해서는 사춘기를 제대로 거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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