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학교에 왜 보내나요?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7강
프로젝트

아마도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이 학교 갈 나이가 되어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다고 할 것입니다. 다른 집 아이들도 다 다니니까 자기 아이도 다녀야 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학교에 보내기도 하고 정규 학교를 나와야 사람구실을 제대로 한다고 기대하기도 합니다. 내가 읽는 신문에서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이라고 매주 한 가지씩 크게 올리고 각성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크게 나누어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고 아이의 특징과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과 학교교육에 관한 것입니다.

궁극으로는 아이의 복된 삶을 위해 학교교육이 어떤 구실을 해야 하는가 하는 아이들의 문제에 모아집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위해 학교에 보낸다는데, 이제 환갑을 넘긴 내 조카 어린 시절의 명언대로 “학교 갈 때마다 월요일 같고 집에 올 때마다 토요일 같다”던 말대로 정작 아이들이 학교 가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의 욕심은 자기들보다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신분의 상승을 꾀합니다. 교육을 통해서 그 목적을 이루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놀이 시기를 제대로 잘 보낸 아이들은 자기들 뜻대로 재미있게 놀듯이 공부하고 자라며 뭔가를 이뤄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순조롭게 잘 해낸 아이들이 마음껏 성취한 결과가 신분 상승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자신이 어려서 이미 어른들의 욕심과 같은 것을 바라고 동기로 삼는다면 이건 건강하지 못한 겁니다. 아이답지 못한 것이니까요. “공부 안 하면 거지가 된다”거나,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 자기의 관심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던가, 삶의 안정만을 위해 선생님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장래 교사가 되려한다면 아이다운 동기를 가진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왜 하려는가?”하는 목적이 뚜렷하면 “어떻게 하는가?”하는 문제는 부차의 것입니다. 아이들이 왜 학교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것에 부모와 아이들이 합의한 일관되고 건강한 생각이 있으면 됩니다. 그러기에 교육의 목적을 바로 세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그 단계에서 자라고 발달해야 할 과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어른들의 욕심만으로 아이들을 준비시키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일하며 사랑하며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이가 혼자만 기능을 잘 익혀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학교에 보냅니다. 혼자 해서 된다면 가정 학교에서 (home schooling) 하는 것이 좋겠지요. 많은 어른들이 “자기 아이만 잘 되기를” 목표로 삼고 아이를 학교에 보냅니다. 거기에 조금 보탠 것이 “자기 집안,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의 이익만 챙기려는 목표로 학교에 보냅니다.

이런 이기적이고 몹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세금으로 공교육을 지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16살 아래 모든 아이들이 동등한 교육을 받아,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자는 것이 공교육이 바라는 바입니다.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이 안전하고 평화로워서 모두 마음 놓고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되기 위해 공교육을 시작한 것입니다. 옆집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목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지금 교육받는 나이가 아니어도 우리나라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건강한 시민이 되는 것을 목표로 우리는 교육세를 냅니다. 우리 모두 학교가 잘 운영되어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세금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배워서 남 주기 위해 학교에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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