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트루사에 온 크리스마스 선물

나는 피난민의 자녀다. 아버지는 휴전선 이북에서 전쟁을 피해 내려오셨다. 경기도 장단의 아버지 고향은 민통선 안에 있어서 볼 수도 갈수도 없다. 예전부터 아버지는 종친회에 무척 헌신하시고 열심인데 얼마전 나에게 종친회보를 보여주시며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시고 몇 분 남지 않음을 짚어주셨다. 아버지의 고향. 휴전선 이북의 장단을 기억할 이가 얼마남지 않음을 알려주셨다.

아버지의 삶에서 전쟁과 굶주림은 큰 족적을 남겼다. 아버지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피하고 시도하지 않고 살았다. 그것은 내 어릴적 기억에서 당연한 삶이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한 나라 안에서 일가 친척들과 함께 움직이셨지만 누구나 이런 행운을 가진건 아니었다. 급박하게 태어난 곳. 삶의 터전을 옮겨야하는 큰 일들을 겪어 국경을 넘어 이 먼곳까지 온 분들이 있다. 그것은 전쟁, 종교, 자유 등의 여러 이유에서였다.

알트루사 (난민과 함께 살기 팀)은 간도에서 내려온(여기에 비하면 경기도 장단은 소풍길일 정도이다.) 피난민인 왕언니 문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되어서 지금 여러 난민들을 만나고 있다. 특히 김순금, 이미경 이 두분은 (난민과 함께살기)의 큰언니이시다.
왕언니와 큰언니가 다들 어찌나 정성스럽고 열심히 찾고 도우시는지 우리는 그저 보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지나고 보니 지극히 높은 곳에서 차분히 잘 계획하신 행사같다. 내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난민공동체에서 캐롤을 부르고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났다.

알트루사가 크리스마스에 큰 선물을 받았다. 그 선물을 어쩌다보니 내가 대표로 받게 되어 기록할 책임으로 이 글을 남긴다.
선물은 2020년 12월 10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경향신문에 난 이 기사(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12111548001#c2b)에서 시작되었다.
기사를 읽으신 왕언니 문선생님은 (난민과함께살기 팀)에서 그레이셔스를 만나 큰언니로 지속적인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라 먼저 줌을 이용한 영상만남을 시작으로 만났고, 우리를 대표하여 이미경 선생님이 그레이셔스 어머니를 직접 만나 의자매가 되었다. 그러면서 지난 2년간 알트루사와 삶의 고락을 같이 하는 이웃이 되었다.
올해는 불광중학교 학부모님들도 뜨개 기부로 힘을 보탰다. 그레이셔스 어머니가 참여하는 난민공동체의 크리스마스 행사에 선물로 써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알게된것이 이 크리스마스 행사는 베이킹 수업 졸업식을 겸한 축하행사이며 베이킹 수업을 이끈 선생님이 바로 그레이셔스 어머니였음을. 그래서 의자매인 이미경 선생님께 와 달라고 초대를 하였으나 부득이한 일로 못가셔서 내가 대신 간다고 하였다. 일터에는 뜨개물품 기부 크리스마스 행사에 참가한다고 허락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격려를 받는 소중한 일도 생겼다.
그러니까 신문기사-난민회의-이미경선생님의 큰언니 연결-불광중 뜨개기부-크리스마스 행사 참여 등등 헐겂게 생각해도 알트루사가 선물받게 하시려고 이렇게 잘 짜여진 계획이 있을까 싶다.
이 과정에서 우리 한명 한명이 참여하여 알트루사가 경험한 일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 부족한 부분은 또 다른 분이 보완하고 덧붙여 주시길 바란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인 어제.
행사장으로 향하는 길에 남편과 동행했다. 남편에게 행사내용을 말하니 동두천까지 먼길이라 여겨서인지 흔쾌히 동행은 했지만 자신은 차 안에 있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그가 도착해서 만난 에릭(?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하 에릭으로 쓴다.)으로 인해 어쩌다보니 행사장으로 들어섰다.
에릭은 군인인데 이 행사를 주관하는 담당자 같았다. 우리가 도착하자 먼저 인사를 건넸고, 통성명을 한 후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내가 알트루사에서 왔다고 하니 크게 반가와하며 아는 척을 하였다. 모두 이렇게 환영하여 주는가보다 싶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남편이 차에 있지 않고 행사장인 2층에 올라왔는데 실무자로부터 그레이셔스 어머니가 참석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전에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소식은 들었는데 행사 참여는 어려웠나보다. 그 얘기를 들은 남편은 만날 사람도 없으니 얼굴만 비치고 가자고 또 얘기했다. 이제서야 여기가 무슨 행사인지 궁금해해서 내가 설명이 많이 부족하구나 싶었다.
그런데 남편의 마음을 누그려뜨려 준건 남편 옆에 앉은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제서야 휴~하고 안심을 했다.
행사는 확실치는 않지만 이 단체의 후원자격인 미군들이 주관하는거 같았다. 그 중 에릭이 가장 일이 많아보였다.
소감 발표가 많았는데 그때부터는 한국어 통역이 있어서 그들의 말을 조금이라도 알아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모두 미리 써온것을 읽었고 내용이 꽤 길었다. 자기 얘기를 성실하게 길게 하는것 같았다. 하지만 마이크 없이 목소리라서 소음에 뭍혀 듣지 못한 말이 많았다. 그래도 기억나는 부분을 한 토막이라도 옮기자면 이렇다.
행사 주관 여군 : 나도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어렵게 자랐다.
베이킹 수업 우수학생 : 우리 가정은 공동체에 많은 영향을 끼질 수 있다.
에릭 : 여러분은 한국에 대표로 왔다. 우리를 도와준 많은 곳을 기억하자.

그리고 이어서 단체별로 공로상 같은걸 주었는데 갑자기 알트루사의 이름이 불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1부 수여식이 끝나고 2부 축하공연이 있었다. 유치원때 이후 아주 아주 오랜만에 산타도 만났다.
이렇게 특별한 날을 기록하며 성탄절 아침에 함께 기뻐하고자 까페에 남긴다.

 

시작 시간

시작 일시
2022-12-25 - 시간 : 14:37

종료시간

종료 일시
2022-12-25 - 시간 :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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