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종

소식지 2023년 3월호(256호)

<여성의 눈으로 건강하게 성서 읽기>

2월 8일

 

게으른 종


이미경

 

알트루사 방학을 끝내고 오랜만에 성서읽기 모임을 했다. 그동안 사정이 생겨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하는 모람들이 생겨 적은 수의 모람들과 루가복음 19장을 읽었다. ‘돈 관리 비유’라는 소제목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인에게 한 미나씩 받고 각각 열 미나, 다섯 미나로 불린 종들과 한 미나를 소중히 간직하고 그대로 한 미나만 내놓은 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지금껏 나는 세 번째 종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고 그 종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갔었다. 특히 "사실 주인님은 엄한 분이라 맡기지도 않은 것을 빼앗아 가고 심지도 않은 것을 거두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무서웠습니다"는 종의 말은 매우 합리적인 이유라고 생각했다. 나는 주인이 무섭거나 무자비하다고 생각했지 종이 게으르다거나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 미나를 빼앗아 오히려 열 미나를 가진 사람에게 주라고 하시고 내가 왕 노릇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종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무섭고 무자비한 주인만이 내게 보였다.

 

그러나 주인이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해 보아라’ 는 분명한 지시가 있었다는 것을 한 모람이 말했다. 그제야 전에는 보이지 않던 구절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게으르고 주인의 뜻을 교묘히 피해가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종의 모습이 떠올려지며 게으른 종과 내가 겹쳐졌다. 엄한 주인을 핑계로 최소한의 것만을 하면서 주님의 뜻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 그래서 한 미나를 소중하게 갖고만 있는 종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 나를 오늘 모임을 통해 제대로 알려 주신 것 같다.

 

자연스럽게 19장 앞부분 ‘자캐오의 집에 묵으시다’와 연결 짓게 되었다. 키가 작은 세관장 자캐오는 군중으로 가로 막힌 곳에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군중을 뚫고 나무에 올라가는 적극성과 열정이 있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마지못해 주님의 뜻을 따르기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열성을 다해 헤쳐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번 모임에서도 마치 퍼즐을 꿰어 맞춰가듯, 모람들의 생각을 나눔으로 주님께서 각자 우리에게 뭔가를 또 알려주시고 계셨다. 매번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음 시간에는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풍성하게 해주실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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