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용기
프로젝트

소식지 2023년 7,8월 합본호(260호)

<정신건강 상담공부>

6월 7일 

걱정과 용기

한제선

 

이번 시간 '평생살이 심리학' 글을 읽으며  "'넘어질라 뛰지 말라'는 식으로 지시 받고 그 지시대로만 살아가는 아이는 독자성을 갖출 수 없다."는 구절이 나의 눈을 붙들었다. "넘어질라 뛰지 말라"는 말은 내게 아주 익숙하다. 상담 모임 전까지 나는 그 말을 지시가 아니라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걱정은 보호이고 사랑이라고 연결했다. 그런데 상담모임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다시 생각해보았다. 왜냐하면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걱정에 휩싸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걱정이 보호이고 사랑이라면 내 마음이 편안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언젠가 나의 걱정을 듣던 남편은  "그렇게 되라고 고사 지내는 거냐?"며 불쾌해 했다. 걱정이 고맙기는커녕 반발할 수 있다니 섭섭했다. 아이들 앞에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절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풀이 죽었다. 그런데도 걱정하는 버릇이 고쳐지지 않았다. 특히 일상에서 더해지고 벌어지는 변수가 있으면 눈앞이 깜깜해지고 일의 결과를 나쁘게 예측했다. 그러니 절망해서 까매진 얼굴로 징징거리게 되었다. 

 

나는 왜 이리 걱정 많은 사람이 되었을까? 그 의문에 대한 열쇠가 친정에 있었다. 얼마 전 친정에서 걱정 많은 나를 엄마와 여동생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했다. "아프지 말아야 한다", "많이 일하면 안 된다"는 다짐과 당부가 오가는 대화에서 나 또한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를 툴툴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한자리에서 얘기하려면 ‘걱정’과 ‘병’ 외에는 관심과 호응이 별로 없었다. 서로에 대해 다른 것은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람쥐 틀처럼 뱅뱅 도는 이야기를 했다.  

 

그날 친정에서의 나를 돌아보면서 내 마음에서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제 걱정이 들면 "나 혼자 하는 게 아니야" 라는 대답이 생겼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미리 대비하지 못한 내 탓을 했는데 이제는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그건 나에게 회피가 아니라 현실 인정이다. 어떻게 다 내가 막고, 해결하고 살 수 있나. 그리고 또 하나 "걱정하지 마, 너는 누군가를 만날 거고 언제든 바뀔 수 있어"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그즈음 작은 아이와 서로 날카롭게 대치하며 전전긍긍하는 내 걱정에 문은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들을 때 갑자기 크게 한 걸음 뛴 것 같았다. 어느 언덕을 단숨에 넘은 것 같았다. 막힌 숨이 트였고, 눈물이 났고, 아이가 다시 보였다. 

 

'그래, 50살에 이르러서! 넘어져도 무릎을 털고 일어나려는 마음을 기꺼이 먹었듯이, 아이도 지금 내가 본 게 다가 아닌 마음을 품고 있을 거다. 그 마음이 아이 인생 어느 때에 누군가를 만나서 알게 될 거다. 그러니 함께 있는 것을 포기하지 말자.' 걱정이 사라진 자리에 용기가 들어섰다. 나는 이 용기를 음미한다. 나에게도 용기가 생길 수 있구나… 감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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