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맞게 자라 충분히 살다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4강
프로젝트

어제는 아윤과 윤지가 만났습니다. 윤지가 아직 걷지 못하는데 아윤은 가끔 엉덩방아를 찧어대지만 곧잘 걷습니다. 이제 평생을 걷게 될 중요한 삶의 과제를 성취한 것입니다. 윤지가 아직 터득하지 못한 과제 말입니다.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 상담실도 들여다보고 바깥에서 같이 놀던 할머니가 버티고 앉아있는 걸 새롭게 봅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큰 방과 작은 방의 의미를 혼자 속으로 묻고 알아갑니다. “까꽁” 하면, 마주보고 자기 따라 고개를 갸우뚱해주며 친절하게 웃던 넓은 방의 할머니가 아니라는 것은 알아갑니다. 윤지가 좋아할 것 같은 장난감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삶의 발달 단계마다 우리는 어려운 과제를 해냅니다. 누워있기만 하다가 뒤집으면 천장만을 쳐다보던 세계에서 머리를 치켜들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고 바닥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됩니다. 관찰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몸의 발달과제를 이루면서 동시에 마음의 영역을 개척하는 과제를 해냅니다. 새로운 시각을 익히고 넓히고 깊게 하는 것은 그때마다 문제의식을 가지게 하고 위기를 겪게 합니다. 엄마가 눈앞에 없으면 아이는 불안합니다. 아윤은 이제 설거지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찾아 나설 수 있습니다. 걷기 전에는 우는 도리밖에 없었는데 걷는 과제를 해냄으로 그 위기를 해결해낼 수 있습니다.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와 세상에 나온 뒤에 겪는 위기감으로부터 우리 모두 온 생을 거치면서 수없이 많은 위기를 맞았고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과제를 풀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적절한 때에 적합하게 극복해왔습니다. 혼자 몸의 발달만으로 해온 것이 아닙니다. 양육하는 부모와 형제자매들과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과제를 이루어가는 것을 익힙니다. 큰 방과 작은 방(상담실)을 알고 분별하는 것을 이모들이 알려줍니다. 큰방에는 다 같이 있어도 되는데 작은 방에는 이모 한 명만 들어가 할머니와 마주 앉아있다는 것을 봅니다. 큰 방에서 같이 놀 수 있었던 할머니나 이모도 작은 방에서는 자기와 놀아주지 않는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을 배웁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윤 엄마가 또 임신했습니다. 이제 아윤이는 언니가 될지 누나가 될지 모르지만 다른 위치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아윤 엄마는 엄마 노릇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지만 이제 아윤이는 더 힘든 과제를 풀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삶의 과제는 끊임없이 우리 앞에 해결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힘듭니다. 그러나 잘 해내면 그만큼 키가 자라듯 우리의 품성이 자라고 튼튼해집니다. 아윤이가 우리의 지난 날의 과제를 가르쳐줄 본이 됩니다. 그때 가지지 못했던 기회를 이제 아윤을 거울삼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모자랐던 것이 무엇이었던지 지우고 고칠 기회가 됩니다. 아윤은 삶의 첫 단계에서 갖출 ‘기초신뢰감’을 넘어 이제 마음껏 삶을 스스로 찾아 나설 ‘독자성’을 과제삼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우리도 같이 그 길에서 자신의 독자성을 아윤이와 함께 되짚어 봅니다.

 

그런가 하면 80년을 산 나도 아직 모르는 인생단계를 내다봐야 합니다. 힘들게 숨을 쉬는 아흔여덟의 오빠를 지난달 9일에 떠나 보내드렸습니다. 그 전날 조카 태근이가 큰 소리로 “은희 고모 왔어요”하니까 눈을 뜨고 뭔가 말하고 싶어하시던 모습에서 내가 감히 오빠의 마음을 안다고 할 수 있었나 생각합니다. 곁에 있던 영미와 같이 감격스런 눈물을 흘렸지만 얼마나 우리가 죽음을 앞둔 오빠의 사랑의 무계를 알고 있을까 먹먹합니다. 나의 어떤 모습도 받아주실 거라는 사랑을 믿는 것, 그렇게 팔십년 동안 내 오빠였던 분과의 관계의 품은 고맙게 풍성했습니다. 나도 아우님들과 이웃들과 그렇게 풍성하게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윤에게 배우듯 앞서가신 분들에게도 배우고 익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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