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일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3강
프로젝트

학교에서 돌아온 집엔 일에 바쁘신 어머니가 늘 계시지 않았고, 친구 엄마들같이 간식을 챙겨주신 적도 없어서 어린 마음에 무척 그 친구들을 부러워했답니다. 자기 어머니만 바쁘셨던 것 아니련만 유독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만 전념하는 듯 보이는 엄마가 아이들을 위해서는 좋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 때는 그랬습니다. 

 

그렇게 자라면서 학교에서 하는 공부란 오로지 집 바깥에서 일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업주부가 되고 엄마가 되는 것을 위한 공부는 거의 없었습니다. 가정 과목 정도였으나 주요 과목이 아니고 그것도 당장 점수만 받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공부만 열심히 하여 자기도 결국 어머니같이 일하는 사람이 될 길에 들어선 셈입니다. 열심히 공부했고, 드디어 전문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며 돈도 벌고, 만족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이 들어, 남자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민이 생겼습니다. 하루 종일 집 바깥에서 몸 바쳐 일해 온 전문직에서 손을 놔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친정어머니에 대한 한맺힌 기억을 어찌 잊었겠습니까? 자기 아이에게 똑같은 경험을 하게 할 수 없어 단연 그만두고 집중해서 아이를 열심히 기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것도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아이를 기르는 것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듯 했습니다. 일을 그렇게 했을 때는 성과가 나서 만족스러웠는데 아이를 기를 때는 아무리 일하듯 열심히 해도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없었습니다.

 

일할 때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기르는 건 눈에 띄는 결과물이 딱히 없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혼자 집에 묶여있습니다. 아이도 엄마를 고마워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엄마도 아이도 서로 짜증을 냅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지나기를 몇 해를 해옵니다. 아이는 이제 엄마 손을 덜 타게 되었습니다. 슬슬 바깥일을 다시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그 긴 시간 일과 아이 기르기를 같이 해온 다른 사람들을 보니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그 공백을 어찌 메울까 생각하면 까마득해집니다. 고민이 깊어집니다.

 

사랑에 빠지고 깊은 관계를 맺게 되는 때인 청년기에 제대로 잘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깊은 관계를 맺는다고 자기를 매몰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이 하는 것’(intimacy)과 동시에 ‘거리두기’(distantiation)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매몰’(self-absorption)되어서는 안 됩니다. 위에 말한 ‘고민 니’가 계속 일을 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것과 일하는 것을 같이 병행해야 하는 자신을 건강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바깥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사랑하면 되고, 집안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집을 많이 비우셨다거나 간식을 챙기지 못했다고 서운했던 관계는 모녀의 가깝고 거리 두는 건강한 관계를 느끼지 못했었기 때문이지 집에 들어앉아 있는 것만으로 해결 할 수 없었던 것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일’과 ‘사랑’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삶에 있어 비중이 아주 높은 것입니다. 사랑을 일같이 한 니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문화 속에서 먹고 살기를 위해 일하는 것으로 생의 모든 과업을 다한 듯이 여기는 풍조도 문제입니다. 친정 어머니의 사랑을 일에 대한 기준 때문에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어머니도 일에 빠져 아이에게 사랑을 전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슬픈 인생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일에 매여 사랑을 외면하는 세대를 만들고 있습니다. 고용창출한다는 새 대통령을 보면서 그가 풀어야 할 과제이지만 그것만으로 젊은이들의 삶의 회한을 풀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히려 다정해 보이는 대통령 내외의 관계가 젊은이들에게 그만치 가르침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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