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고 성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6강
프로젝트

놀랍게도 사랑한다고 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성을 즐기지 못하고 사는 것을 봅니다. 어떤 젊은 부부는 한 해에 한 번 명절에 성관계를 맺는답니다. 훗날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두 사람 이혼했답니다. 그 소식에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 부부가 정말 사랑하며 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몸으로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렇게 해서 함께 느끼는 만족스러운 상태를 우리는 “극에 달했다” 합니다.


그런데 요즘 성은 많이 개방된 것같이 보입니다. 매체의 범람은 어린 나이에 벌써 눈을 뜨게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랑이 전제로 되지 않은 경우에는 몸의 자극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서로 제대로 알아가는 꾸준한 사귐도 건너뛰고 만나기만 하면 당장 뛰어드는 것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그러나 제대로 몸과 마음이 발맞추어 고르게 성장하지 못한 많은 젊은이들이 밀접함과 거리두기가 뭔지도 모른 채 몸의 성장만으로 이성을 대하면서 온갖 문제를 일으킵니다. 친구가 마음에 들어 욕심내는 여성에게 억지로 접근할 나쁜 기획에 가담했다는 젊은 날의 과거 행적에도 뻔뻔스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자랑스레 여자 친구를 납치해서 결혼에 성공했노라고 떳떳하게 잡지에 인터뷰 기사로 실린 또 다른 정치가를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유명인들의 처사만이 아닙니다. 마음에 드는 여성을 빨리 점령하라(?)는 ‘지혜’를 귀띔해주는 선배나 동료들의 말을 따르는 사람들을 우리는 적잖게 보아왔습니다. 여성을 자신의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믿고 존중하는 마음을 바탕에 두고 하는 사랑이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성의를 품은 몸의 사랑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런 자세가 아니면, 나이만 차면 남들이 하는 연애는 해야 하고 연애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여깁니다. 나이 찬 딸을 둔 사람들은 나이 찬 남자를 소개받기도 합니다. 나이만 찼다고 사랑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냉담하게 원망하며 사는 노부부를 보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중생활하는 사람들도 이를 증명해줍니다. 사랑과 성이 겹쳐져야 하는 것인데 이런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에 대한 잘못된 인상도 한 몫을 해왔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성욕은 남성의 소관이라는 듯 여겨, 여성의 성욕을 수동의 자세로만 보려 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는 사랑은 깨끗하고 아름다우나 몸으로 하는 사랑은 추해서 피하려 해온 자세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데는 두  사람이 필요합니다. 두 손이 맞아야 손뼉도 칩니다. 두 사람의 밀접한 사랑의 호흡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결국 성이란 무르익은 사랑의 한 과정이어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서로 바라보는 눈빛에서부터 땀이 나도 잡고 있는 손, 힘주어 서로 안은 품, 서로 어루만지는 쓰다듬기 모두 사랑 그리고 성입니다. 꼭 마지막 단계(?)라 부르는 행위만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 통상의 순결 지키기는 극히 간단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마음에 품은 것이 벌써 행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살인도 미움이 싹튼 순간에 행해진 것이고, 간음도 음심을 품었을 때 이미 저질러진 것임을 말합니다.


이런 성실한 자세로 젊음의 때를 지낼 수 있다면 뉴스 시간마다 나오는 사건을 얼마나 줄일 수 있겠습니까! 젊음의 때에 해결되지 않은 것은 또 그 다음 시기로 그대로 넘어가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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