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사는 삶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10강
프로젝트

따돌림당한다는 것은 기막히게 힘든 경험입니다. 우리들은 따돌림당하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애를 씁니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생활 방식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렇게 할 자신도 없고 그러고 싶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독불장군”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부류 사람들은 서로 다른 듯이 보이지만 실은 똑같은 바탕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는 것을 짐작하고 언젠가 눈치보다가 우발적으로 한 행동이 “착하다”는 반응을 불러왔기 때문에 그 행동을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눈치보며 살아온 것이기도 합니다. 독불장군의 경우는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자기 마음밖에 몰라 자기 마음대로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허용되는 형편에서 자란 경우들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이런 방식으로 사는 것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서로 알아주고, 용납받으며,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야 만족스럽기 때문입니다. 서로 알아주고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는 놀이시기에 이르기까지 아이의 마음을 어른이 제대로 알아주고, 용납하고 사랑하는 체험을 하는 것이 필수조건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마음도 알 기회를 가지고, 나가서 또래의 마음도 알아갑니다. 따돌림당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지 못하게 눈이 멀고,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 다니게 되면서 동무들의 요구에 대해 어디까지 들어주고, 어디부터 거절해야 할지 모른다는 말을 하는 경우를 봅니다. 엄마가 일일이 따라다니며 알려줄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마음을 알아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것이 자연스레 되어야 합니다. 동무에게 “No!” 했다고 해서 그 동무가 자기를 싫어하고 같이 놀지 않게 될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동무도 자기의 마음을 알아줄 것을 전제로 하는 우정이 생기고 자라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동무의 마음을 알고 그 표현을 알고 존중하는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합니다.

이런 이해는 평생 여러 단계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자신과 비슷한 배경의 사람만을 만나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 경제, 문화, 학력, 신앙, 성별, 나이, 건강, 성격 같이 다양한 여러 요인들이 얽혀 더욱 복잡한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경제로는 여유있게 자라온 사람이라고 모든 면에서 여유 있는 품을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처지라 하더라도 삶의 모든 면으로 베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배운 것이 많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심으로 모든 것이 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조건 없이 알아줄 수 있게 된다면 우리에게 편견이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두 주 전 이 시간에 동기간에 돈을 꿔주는 남편 때문에 속상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삶의 여러 면을 균형있게, 편견없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같이 사는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를 생생하게 그린 빈센트 반 고흐는 자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평생 동생 테오 (Theo)의 후원으로 살며 작품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그 만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니 그럴 만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도 다 같은 가치를 지닌 것이라는 마음이 놀이시기에 자라도록 제대로 돌보는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태어나자마자부터 공부 잘해 일류대학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좋은 데 시집가는 것만을 가치로 삼는다면 그렇지 않은 자기 아이를 괴롭히기만 하고 건강한 양심을 길러주지 못할 것이 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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