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어른과 아이 사이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8강
프로젝트

큰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바른생활 시간에 가장(家長)에 대해 배우고 시험을 봤습니다. 첫 문제에 걸려 시험을 엉망으로 본 겁니다. “우리 집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문제의 답은 ‘아버지’여야 한다는 것을 그 아이가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아빠, 엄마, 동생이 다 자기만큼 중요한 사람이라는 고민에 빠져 다음 문제로 넘어갈 수 없었답니다. 그렇다고 우리 가정에서 어른과 아이가 완전히 평등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냥 아이들과 어른의 위치를 우리가 얼마나 의심없이 차등을 두고 가르치고 배워왔는가를 생각해보자는 말입니다.

 

어른으로 익숙한 안목을 가지고,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면 아이는 불완전하고, 한참 모자르고, 아무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남성 중심 생각으로 보면 여자가 부족하고 뭘 모르고 산다고 여깁니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몸이 성한 사람은 자기보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가방끈이 긴 사람은 가방끈 짧은 사람을 무시하고 가르치려 듭니다. 어차피 모두 서로 다른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인정하고, 길고 짧은 대로, 서로 즐겁게 돕고 같이 살면 좋을 텐데, 그러려 하지 않습니다. 왜 이런 고약한 풍조가 생겼을까요?

 

목소리 크고 힘이 있는 어른이 어른보다 힘이 약하고 아직 표현할 말이 덜 갖추어진 아이를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어른의 생각으로, 그 생각이 마치 고칠 것 없이 완전한 것인 양, 아이들을 일방으로 가르치고, 아이는 또 그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장합니다. 어른이 보기에 부족해 보이고 고쳐야 한다고 여기는 아이의 행동에 아이 나름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전혀 보려하지 않습니다. 우리 누구나 한때 아이였기 때문에 성별, 경제 요인, 몸의 건강, 교육 수준 같은 조건을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 겪어내야 하는 불평등입니다. 그래서 더욱 심각한 보편의 문제이고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어린 시절이 빨리 지나가고 어서 어른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 불평등한 관계의 영향이 어른이 되면 사라진다고 하면 그냥 참고 눈 감아 줄까요? (물론 그럴 수 없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어린 시절 겪은 불평등의 영향이 평생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근본의 해결을 보아야 합니다. 놀이시기에 아이들은 양심과 도덕이 자랍니다. 일방으로 어른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서 자란 사람은 바깥 기준으로 걸려들지 않을 방도만을 찾는 사람이 됩니다. 금지된 규율만이 그의 삶을 좌우합니다. 자신의 욕구와 행동동기를 인정받지 못하고 바깥(어른) 기준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엄격한 도덕주의(moralism)에 매여 살게 됩니다. 진정한 도덕(morality)과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규제와 상관없이, 법 이전에 이웃의 마음을 알고, 함께 살아가는 참 이웃이 되는 것을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른과 아이의 불평등이 가정 안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이것은 아이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아이들더러 “왜 말하지 않았느냐?” 채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아이들의 형편을 살펴 알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늘 아이들의 필요를 알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기마음을 솔선해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네 어른들이 이런 행동을 선선히 용납하는 습속에서 자라고 살지 않아서 그런 태도가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애초부터 아이의 욕구와 필요는 아예 금지되어온 셈입니다. 어른의 말(씀)이 아이의 말보다 유창하기도 하고, 강도도 더 세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아이들끼리 평화스럽게 잘 지내는 것보다 어른 말을 더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아이들도 익히게 만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은 눈치보아야하고 양심은 뒷전이 되었습니다. 양심은 각각 마음속에 섬세하게 생겨야 하는 것인데, 우리네 양심은 길거리의 확성기로 외치는 구호에 그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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