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놀기만 한다면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2강

해마다 5월이 되면 어린이날이 돌아오긴 합니다. 한 해 365일 가운데 단 하루뿐입니다. 그날만은 신문 첫 쪽에 시커먼 어른 대신 환한 아이 얼굴을 싣습니다. 이번 해에도 이날을 맞아 비눗방울을 쫓는 아이의 아이다운 표정에 기분 좋은 아침을 맞았습니다. 금방 사라질 비눗방울이지만, 단 하루뿐인 어린이날이지만 아이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고마워하며 미안한 기쁨을 품습니다. 같은 면 옆구리에 “친구야 놀자!”라는 말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기사제목은 <어린이에게 놀이는 ‘권리’>라는 제목이 떠있습니다. 17개 시도 교육감들이 모여 ‘어린이 놀이헌장’을 선포했답니다. 어린이들의 ‘놀 권리’를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첫 걸음이라며 크게 알리는 기사였습니다.

그러고는 8쪽에 한 면을 다 관련기사로 채웠습니다. 그런데도 선뜻 마음이 내려앉지 않습니다. 지방 어느 학교에서 하루 한 시간 놀이시간을 줬더니 자기주도 학습능력이 쑥쑥 올랐다고 하는 말입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선생들에게 놀이 권리를 지켜달라”는 요구에 미끼가 또 역시 학습능력 올리기에 걸려있게 될까 싶어서 말입니다. 그나마 ‘자기주도 학습’이라니 ‘솔선’의 덕목과 연관될 것을 슬쩍 연결해서 기대해 보긴 합니다. 교육방향 전환의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서 이를 제안했다는 강원도 교육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실은 아이들의 놀기를 방해하지 않아야하는 것은 학교 가기 전에 철저히 지켜져야 합니다. 그건 가정에서 부모들이 지켜야 할 책임입니다. <부모헌장>이 필요한 것이지요. 우리네의 경우 놀이시기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탓에 학교에 가서야 놀이 헌장이 필요해진 것뿐입니다.

놀이시기에 이른 아이들은 첫째로, 근육과 뼈대의 발달로 해서 마음껏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움직임에 관한한 아이는 널리널리 움직여야 합니다. 움직임의 목표가 한계를 지을 수 없어집니다. 그뿐입니까? 둘째로, 이때 아이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말의 발달이 충분히 완성됩니다. 말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과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게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끊임없이 묻게 합니다. 지난 주일 은유와 동화가 만나 얼마나 소통을 잘 하고, 어른들에게 와서 완벽하게 보고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셋째로, 움직임과 말의 발달은 아이들로 하여금 상상의 세계를 넓히게 합니다. 동화가 잠든 것도 아닌데 꿈꾼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딴에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 무서운 일을 당하고는 꿈에 늑대에게 물렸다고 합니다. 자기가 가진 말의 뜻을 (보기로 늑대는 무섭고 나쁜 동물이다.) 가지고 현실의 자기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 말로 엄마에게 자신을 알아주고 보호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이 세 가지를 잘 쓰며 놀아본 아이는 깨지지 않은 ‘솔선의 감’ (sense of initiative)을 가지게 됩니다. “놀 줄 안다”는 말이 춤을 잘 추고, 운동을 잘 하고, 말을 잘 하고, 꾸밈이 화려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재능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거침없이, 자기답게, 진실하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상담을 하면서 만난 거의 모든 우리네 여성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것을 늘 안타깝게 봅니다. 자기 삶을 자기 뜻대로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같이 따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네 여성들에게는 솔선의 감이 없다는 것을 통탄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려운 일이 닥치면 눈감고 싶고, 귀를 막고 싶고, 그 어려운 일이 그냥 자기 앞을 지나쳐 가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놀이시기 때 아이 자신이 놀지 않고 누가 대신 놀아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 겁니다.) 상담하는 내가 내담자의 삶에 대해 내담자보다 더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곤 합니다. 상담자가 대신 내담자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 수 없는데 말입니다. 상담자가 대신 그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줄 수도 없는 것은 물론입니다. 자기 삶은 자기가 사는 것임을, 그것도 활발하게 총천연색으로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고 높이 날 수 있는 것임을 익히는 때가 바로 놀이시기입니다. 자기주도 학습효과 상승 정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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