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하는 사람과 어떤 사람인가의 차이 (doing & being)
우리나라 여성의 삶 - 에릭슨발단단계를 따라
프로젝트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우리 모두 다 압니다. 쉴새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를 닮아야 한다고 우리 모두 배워왔습니다. 놀기만 하던 베짱이는 추위가 몰려 왔을 때 개미에게 구걸하는 불쌍한 처지가 된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의 논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배웠습니다. 베짱이의 됨됨이는 개미와 달라서 자기의 몸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데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이 그린 그림에는 깽깽이 악기를 들고 있습니다. 개미는 개미답게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베짱이는 베짱이답게 소리를 내면서 살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베짱이의 처지가 더 불쌍한 것이 아니고 개미와 다를 뿐입니다. “개미에게 구걸한다니!” 베짱이를 전혀 모르고 말하는 엉뚱한 오해의 소산일 뿐입니다. 베짱이에게 개미같이 살아야 한다고 교훈합니다. 베짱이 같은 재능을 가진 존재에게 개미같이 살라고 한다면 그보다 더한 형벌이 없을 것입니다.

쉬지 않고 뭔가 해야 하는 사람, 개미를 본받아 사는 ‘개미 사람’, 쉬고 있는 동안에도 쉬지 못하는 사람, 엔진이 늘 켜져있는 기계 같은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병들어 (psycho-somatic disease) 마모(磨耗)되고 있는 것입니다. 개미와 베짱이를 몰라주듯, 아이들의 특징과 그에 따른 욕구와 필요를 알아주지 못한 어른들 탓에 생긴 병입니다. 이런 어른 탓에 아이들은 자신의 느낌과 상상력 같은 내면의 힘과 가능성을 살리지 못하고 주어진 것을 열심히 따라하는 사람으로 전락합니다.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의 아이들은 자기 내면의 소리를 눌러버립니다. 자기에게 충실하지 않고, 자기마음의 소리를 배신하고, 자신에게 죄인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자기 소리를 잃고, 자기 맛을 모르고, 자기 멋을 살리지 못하고 안전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집니다. 자기가 스스로 자신만이 가진 사람으로의 값진 자원을 저버리고 살게 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그렇게 하도록 만든 장본인입니다. 어떤 결과물을 버젓이 내 놓을 때만 어른들이 알아주기 때문에 아이는 (개미의 의도를 모른 채 겉으로 보이는) 개미의 짓거리만을 열심히 재생하는 개미 아닌 개미가 됩니다. 베짱이 같은 아이였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스티브 쟙스가 어린 시절을 얼마나 자기 마음의 소리에 따라 잘 놀았을지 짐작해봅니다. 어른이 되어 자기 마음의 소리에 따라 살아 온 것을 보면서 넉넉히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 강연장에서 만난 한 엄마의 변이 생각납니다. 개인이라는 행동 단위로 사는 서구 사회가 더 문제가 많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좋은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자기네 사회의 문제를 풀어야 하겠지요. 우리는 우리들 사회의 문제를 우리 나름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아이들 각기 충분히 자기 나름으로 다양하게 꽃피고 열매 맺으며 살기를 일찌감치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는 문제를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응했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똑같은 길을 경쟁하며 걷게 만들어 사회의 부속품 같은 기능만 하는 존재가 되어서야 하겠습니까? 이미 존재하는 사회기구에 맞추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수동의 기능인 말입니다. 마치 이걸 책임감 있는 행동이라 합니다. 그러나 자기 내면의 소리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집니까?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내면의 소리가 다 들리고 서로 들어주는 사회를 만들면 어떨까요? 그러려면 아이들이 내는 소리를 어른들이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끼리도 서로 다른 마음의 소리를 듣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뭔가 해야 하는 강박감에서 놓여나야 합니다. 그냥 서로를 느끼고, 알아주고, 아끼는 마음을 체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개미와 베짱이가 서로 존중해주는 이야기를 새로 써야 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존재하는 맛을 놀이 시기에 만끽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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