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목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지금 교육받는 나이가 아니어도 우리나라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건강한 시민이 되는 것을 목표로 우리는 교육세를 냅니다. 우리 모두 학교가 잘 운영되어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세금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배워서 남 주기 위해 학교에 가야 합니다.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가 열등감을 가지게 되면 수(학)포(기)자가 되는 것이고, 배움-깨우침-익힘의 과정을 잘 거치면 수(학을) 재(미있다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수학과목만이 아닙니다. 모든 과목, 온통 삶의 모든 영역을 성실하고, 진지하고, 열심히 대하고, 생각하고, 풀어가려는 자세를 갖추게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학령기에 길러져야 할 삶의 자세가 바로 이것입니다.
학령기 어린이들에게 스스로 배우기의 재미를 잃지 않고 철저히 익히고 싶게 지도하는 선생이 필요합니다. 부모건 교사건 좋은 선생은 아이가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영역을 알아 재미있게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은 기술만 익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있는 영역의 내용을 함께 깊이 이해하고, 즐겁게 감상하고, 마음의 양식으로 삼아 어른이 되어 사는 데 든든한 자산으로 삼게 됩니다. 공부의 맛이 이것입니다. ‘자기주도 학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주도 학습을 따로 학원에서 배우게 하는 코메디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발달시기를 한 단계씩 거쳐 오르면서 언제나 앞 단계와 뒤따르는 단계가 어느 정도는 겹쳐집니다. 학령기에 놀이시기의 재미가 같이 있어 아이들이 재미롭게 공부해 온 것을 보았습니다. 뒤 따르는 사춘기 때는 어른으로 커리어를 가지기 전에 일관된 자기다움을 찾아내는 때로, 학령기 후기에 배울 것을 익힌 자신의 능력과 성취체험, 그리고 환경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일관되게 자신이 인정받고 위치설정되었던가 하는 것으로 해서 앞뒤 시기와 겹쳐집니다. 자기가 속한 사회계층이나 부모의 문화 사회 경제상의 위치 같은 것을 의식하는 때이기도 해서 정체감을 거기서도 보태고 얻습니다. 몸의 성장속도가 빨라지고, 제2차 성징이 드러나 몸의 변화를 예민하게 체험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아이 때와 어른 되기 사이에서 양편을 다 엉거주춤 엿보고 느끼는 때입니다. 그만큼 갈피잡기 어렵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때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내면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사이에서 동질성 (sameness)과 일관성(continuity)을 찾게 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다”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쟤는 어떤 사람이다” 같이 가게 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정보만 익히는 교육을 하면서, 정보를 재생하는 성취만을 조장하면서, 사회성의 발달은 아무 데서도 건드리지 않은 채 아이들이 어느덧 사춘기에 이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깡그리 놓치고 몸으로 사춘기를 맞습니다. 사람 사이에 서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인지 온전히 모르고 몸으로 어른이 됩니다. 그것도 옛날보다 영양상태가 좋아 사춘기는 빨리 맞게 됩니다.
뭐든 “즐긴다” 하면 흔히 “놀기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주는 책임감 없이 함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신의 욕구를 알고 성실하게 실험하고, 봉사활동도 하며, 아빠에게 피아노 레쓴을 하며, 삶을 열심히 즐기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그 나이에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임에 빠지고, 담배를 끊지 못하고, 유행이나 성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 행동이 아니라도 우리네 어른들이 좋아하는 공부(시험준비하는 학교공부)에만 머리 틀어박고 하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춘기가 길어질수록 생각하고 풀어야 할 요인은 많아지고, 어른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많아집니다. 사춘기 아이도 힘들고 그 아이를 양육하는 어른도 힘들어집니다.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럽고 다루기가 아주 힘들어집니다.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고 잔재주를 부릴 수도 없습니다. 속 빈 칭찬을 건성해서는 아이들의 마음을 살 수 없습니다. “앞으로 잘 될 거야!” 말한다고 위로가 되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이 자기파악과 현실인식을 누구만큼 다 잘 하고 있으니까요. 자기의 문제를 환경에 돌리거나 다른 사람 탓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삶의 문제의 늪에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사춘기는 집안의 영향보다 바깥의 영향이 커지려는 때입니다. 또래의 풍조가 크게 압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집안에서 가족들과 건강한 관계를 이미 맺고 있어야 바깥의 압박도 견뎌낼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깥의 세계가 언제나 따스하고 우호(友好)의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버티고 조절하면서 서로 협조하는 관계를 만들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열쇠입니다.
아이들은 때때로 어른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핀잔을 주고, 기를 꺾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행동한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으니 그 동기를 알려고 진정으로 궁금해해야 합니다. 건성으로 하는 건 소용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불신을 키웁니다. 이해하려 하고 알아주는 어른들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부모를 통해 우리 사회문화 안에서 아이들이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알트루사에서는 이제라도 사춘기를 잘 거쳐 자기답게 자기와 다른 사람들과 사랑하며 지내려 하는 곳입니다. 잘잘못을 재단하려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여기는 어제와 다른 오늘의 마음 바뀜이 소중한 곳입니다. 웬 변덕이냐 하지 않습니다. 상담실 안에서 만이 아니라 재미있는 학교에서, 아잘사 모임에서, 심리학 교실에서, 자활 회의에서, 이사회에서, 점심 먹으며, 노래하며, 뜨개질 하며, 목욕봉사하며, 성경공부시간에, 여기 집단상담 시간에 마음을 바꿀 권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깨달음이라 여기니 마음 바꾸는 것에 감격의 박수를 보냅니다.